한유총은 강한 조직력과 로비력을 갖춘 대표적 이익단체다. 유치원 원장들은 지역사회 입김이 세 소위 ‘빅 마우스’로 불린다. 원장 한 명이 유권자 200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시도 교육감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구청장은 선출직이라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원장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매년 2조원의 세금이 사립유치원에 지원되지만 관리와 통제가 안 된 배경에는 이런 커넥션이 숨어 있다. 유치원 경영자들이 안하무인이 된 것이다.
채희창 논설위원 |
사립유치원 비리는 일차적으로 유치원 경영자에게 있다. ‘2013~2017년 전국 17곳 시도 교육청의 유치원 감사 결과’를 보면, 유치원 총 1878곳이 부정·비리 5951건을 저질렀고, 289억원을 부정하게 사용했다. 또 가짜교사를 등록해 정부의 보육교사 처우 개선 지원금(1인당 59만원)을 타 간 수백 곳이 적발됐다. 한유총은 “이유를 막론하고 학부모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지만 회계 비리가 제도 미비 탓이라는 기존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박 의원에 대해선 민사소송을 검토 중이다.
교육당국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 2013년 유아교육 5개년 계획에 따라 올해까지 완성 예정이던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은 올 초 새 5개년 계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작년 2월에 대형 유치원의 회계 부정을 적발한 뒤 투명한 회계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집단휴업을 불사하겠다는 유치원들 으름장에 꼬리를 내렸다. 뒷북행정이자 직무유기 아닌가.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비리유치원을 키운 건 8할이 교육당국”이라고 질타할 정도다.
국회의원들은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냈다가 한유총의 압력에 법안을 철회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 의원은 2016년 유치원 학급편성이나 교사 근무시간을 법으로 규정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열흘 만에 철회했다. 박 의원도 “이번 명단 공개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솔직히 지금도 겁난다”고 토로할 정도다. ‘의원 위에 원장님’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전국 유치원·어린이집에 대한 전수조사와 비리 실명공개 의무화는 당연하다. 교육당국은 그동안 사립유치원들이 행정처분을 받아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실명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샀다. 비리 정도가 심하면 인가취소하고, ‘간판갈이’가 불가능하도록 일정 기간 재개원을 금지해야 한다. ‘지원금’인 누리과정 세목을 ‘보조금’으로 바꿔 이를 유용하면 횡령죄로 다스리고 환수해야 한다. 국공립유치원과 동일한 회계시스템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교육과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다. 시도 교육청 책임자들은 ‘직을 건다’는 각오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물러서선 안 된다. 학부모들도 시민감사관 제도에 적극 참여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지 못하면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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