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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 “평양역은 물론 신의주역까지 제 손으로 설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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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29 06:00:00 수정 : 2018-09-28 20: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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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건축물 전문건축가 서진철 회장/운명적 철도고 건축과 입학/장학금 혜택으로 전국서 인재 몰려/건축에 관심 많은 형의 권유로 지원/유일하게 3개 지망 모두 건축과 선택/20년간 철도청 공무원 생활/설계 능력에 사업 추진력까지 갖춰
“북한의 평양역(驛)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제 희망이 이루어지면 서울에서 도라산역과 개성역을 지나 평양까지 모두 제 손으로 설계한 역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경제협력이 훈풍을 탈 것으로 기대되면서 국내 최고 교통건축물 설계회사인 ‘혜원까치종합건축사무소’의 서진철(64) 회장에게는 욕심 하나가 생겼다. 평양공동선언에 ‘동해선 철도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연내 개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됨에 따라 북한 역사 설계를 하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갖게 됐다. 서 회장은 이미 동해선과 경의선의 역사를 설계한 경험이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전신인 철도청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후 평생 철도역사와 공항 등 교통건축물 설계에 매진하고 있는 서 회장을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만났다.

서 회장은 국립철도고등학교 건축과를 1회로 졸업하면서 교통건축물 설계 인생을 시작했다. 서 회장에게 철도고등학교 입학은 운명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날 아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학시험을 보는 날 어머니는 서둘러 둘째아들인 서 회장을 깨워 시험 장소로 보냈다. 아버지가 운명하면 아들이 시험을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서 회장은 입학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철도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고등학교 진학은 어려웠을 것이다.

철도고등학교에는 운전과, 전기과, 건축과 등 6개 학과가 있었다. 학과별로 50명씩 300명의 신입생을 선발했다. 서 회장은 대학 건축학과를 지원한 형의 권유로 건축학과를 지원했다. 입학원서에 3개 학과를 지원할 수 있었지만 서 회장은 동기생 가운데 유일하게 1, 2, 3지망 모두 건축학과를 택했다. 철도청 설계업무는 역사뿐만 아니라 학교, 공장, 체육시설 등 철도청 산하에 다양한 건축물이 많아 대한민국 건축의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건축물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데다 장학금 혜택을 받아 공부할 수 있어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렸다.

서 회장은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첫 발령지는 서울지방철도청 건축과였다. 그는 20년 동안 밤낮없이 역사 설계 도면을 그렸다. 역사 설계에 청춘을 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탄한 설계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사업추진력이 있어 동기생보다 승진이 빨랐다. 1981년부터 3년간 철도청에서 건설 업무를 담당하는 건설창 건축공사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중앙선 이설공사를 맡았다. 충주댐 공사로 인해 단양지역 일부가 수몰돼 철로를 옮기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서 회장은 현장에서 직접 설계를 해가면서 공사를 진행했다. 설계변경이 필요할 경우 본사 지원 없이 현장 상황을 고려해 도면을 그렸다. 당초 설계로는 도저히 공사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간 내 완공이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 회장은 현장 상황에 맞는 설계를 통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길 경우 철도청 근무 시절 청춘을 바쳐 일한 현장을 찾곤 한다.

서 회장의 추진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역 민자 역사 공사 때 또 한 번 드러났다. 이 공사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도시계획법, 건축법에 의해 제한을 받고 있었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상위법부터 순서대로 허가를 받아야 했다. 법규대로 진행할 경우 행정소요기간만 2년 정도 걸릴 정도로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었다. 이렇게 추진할 경우 서울올림픽 전에 준공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었다. 서 회장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행정 처리를 하는 투 트랙 전략을 택했다.

서 회장은 저돌적인 사업 추진으로 인해 88서울올림픽 직전에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사를 정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서울역민자역사를 불법건축물이라고 보도해 감사원 특별감사를 받아야 했다. 감사 결과 불법 사실이 없다는 것이 판명 나고 철도청장으로부터 30만원의 포상비를 받아 직원 회식까지 했다. 감사를 맡은 감사위원도 사석에서 앞뒤 재지 않고 일을 추진하는 서 회장을 칭찬했을 정도다.

서 회장은 1993년 순천지방철도청 건축과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 건축사무소를 창업했다.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과 은행으로부터 빌린 5000만원을 합쳐 서울이 아닌 경기도 고양시에 사무소를 냈다. 서 회장과 남자직원 2명, 여직원 1명, 4명이 힘을 합쳐 일을 시작했다. 철도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서 회장 건축사무소에는 일이 밀려 들어왔다. 1년 만에 서울 강남으로 사무실을 옮길 정도였다.

서 회장은 철도청에 사표를 내면서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창업 후 아무리 일감이 없더라도 철도청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건축사무소를 냈다는 소문이 나면서 철도청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외주를 줘야 하는 건축물이 있는데 적합한 건축사무소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일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서진철 회장은 지난 18일 “남북 경협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북한 철도역 설계를 하고 싶다”며 “이미 6개의 북한 역을 설계한 경험을 살려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 멋진 역을 만들고 싶은 희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평양역은 물론 국경역 기능을 하게 되는 신의주역까지 설계해 대한민국의 교통건축물 설계 실력을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서 회장은 창업 후 경의선 효창역을 처음으로 설계했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주가 이어졌다. 2000년 부산고속철도차량기지를 설계하고 감리했다. 차량기지 설계를 위해서는 검수설비 실적이 있어야 하지만 사무소를 낸 뒤 얼마 되지 않아 실적이 없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대우건설이 설계에 참여한다고 약속해 수주했다. 이때 감리를 수행할 업체가 없어 수의 계약으로 감리를 맡기도 했다.

서 회장은 건축사무소를 교통건축물 전문설계회사로 특화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교통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한다. 건물 내부로 철로를 놓고 열차가 다니는 특성을 고려하는 등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도 서 회장 건축사무소 작품이다. 공항철도와 공항버스, 택시 등 다양한 교통수단과 이용객의 동선을 합리적으로 구성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본래의 기능에 편리성과 안전성을 확보해야 제대로 된 교통건축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의 H자로 된 교통센터 설계도 서 회장의 건축사무소 작품이다.

서 회장은 2010년부터 철도건축기술협회장을 맡고 있다. 국립교통대학, 코레일 시설공단과 함께 매년 대학생 철도건축물 공모전을 개최해 교통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있다. 서 회장이 제안해 만든 이 공모전에서 우승하면 국토건설부장관상인 철도건축문화상이 수여된다. 서 회장 건축사무소의 기술력은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2년 전 필리핀 팔라완섬에 위치한 푸에르토 프린세사 신공항을 설계해 해외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서 회장의 설계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북한의 역사 6곳을 설계한 것이다. 서 회장은 동해선과 경의선의 북한 지역에 위치한 역사를 모두 설계했다. 경의선의 개성역, 판문역, 손하역을 설계했으며 동해선은 금강산역, 삼일포역, 감호역이 그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다. 남쪽에 위치한 도라산역과 저진역도 그의 작품이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도라산역 설계 당시 철도청 관계자는 지뢰 등 위험요인이 많으니까 컨테이너를 헬리콥터로 옮겨 간이 역사를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서 회장은 “제대로 된 역사를 짓지 않는다면 설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회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현재의 도라산역이 만들어졌다.

그는 도라산역 설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현재 도라산 역의 지붕은 당초 설계보다 낮게 시공됐다. 군 작전상 지붕을 낮게 지어야 한다는 군부대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설계를 변경해 지금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또 북한군이 도라산 역사를 점거할 경우 남쪽으로 총을 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쪽 방향에 창문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북한 쪽에 있는 역사의 설계는 서 회장이 했지만 공사는 북한군이 맡아 진행했다. 북한 측 관계자는 3000억원이 들어간 경의선 문산 차량기지를 본 후 똑같은 건물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예산문제 등으로 인해 기관차만 수리할 수 있도록 규모를 대폭 축소에 설계했다. 차량기지의 경우 폭 100m, 길이 200m 가 최소 규모이지만 길이 30∼40m 크기에 5t짜리 크레인 하나를 설치하는 소규모로 지었다.

금강산역의 경우 신축된 5개 역과는 달리 외부 골조는 그대로 두고 내부만 바꿨다. 하지만 골조가 낡아 원활한 동해선 운영을 위해서는 신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서 회장은 남과 북의 철도연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축사무소의 장점을 살려 북한 역세권 개발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남북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철도와 연결될 경우 국경역 역할을 하게 되는 신의주역사 설계를 직접 하고 싶은 의지를 밝혔다.

서 회장은 “건축 설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며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면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그는 “천년을 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욕심이 있다면 건축설계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소개했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서진철 회장은 △1954년 서울 출생 △1973년 국립철도고등학교 건축과 졸업 △1983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3년 서울지방철도청 건축과 △1993년 혜원까치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2010년 철도건축기술협회 회장 △2010년 서울시 기술심사위원 △2013년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 △2017년 서울시 도시재정비 위원 △2004년 대통령 산업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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