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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현장+] '시속 60㎞ 질주' 불법 튜닝 활개치는 전동 킥보드…'아차' 하면 치명상

입력 : 2018-08-26 13:00:00 수정 : 2018-08-26 14: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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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킥보드, 도로 위 시한폭탄 / 부딪치면 중상 / 매년 사고 급증…뚜렷한 안전 규제 장치 없어 / ‘킥라니’(킥보드+고라니) 신조어 / 사고나면 차량과 동일하게 처벌 / 단속 전무…수요 늘자 사고 발생도 늘어 / 제한속도(시속 25km) 초과…불법튜닝도 성행

지난 17일 오전 5시쯤 서울~양양고속도로 요금소 인근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한 시민이 헬멧 등 안전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고속도로 진입 구간을 달리고 있다.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는 구간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급정거를 하는 등 대형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안전장치요? 브레이크밖에 없죠. 방향지시등, 전조등, 룸미러 등 장착할 수도 없고, 달아도 거추장스러워서 불편해요. 몇 번 넘어진 적은 있어도 큰 사고 난 적은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날씨가 더운데 헬멧을 쓰는 사람이 있겠어요?”

서울 용산에 사는 강모(28) 씨는 늦은 밤길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용산역 앞 차도에서 우회전 중 인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전동킥보드와 부딪힐 뻔하다 가까스로 피한 일이 있었다. 강 씨는 "어둡고 잘 보이지 않는 밤길에서 전동킥보드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간담이 서늘했다"고 토로했다.

용산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37)는 강남역을 지날 때마다 긴장한다고 했다. 불쑥 등장하는 킥보드 때문에 운전 중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씨는 강남역 인근에서 차량 옆쪽으로 지나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전동킥보드와 부딪혀 사고 날 뻔했다. 그는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며 “쌩쌩 달라는 전동킥보드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보다 요즘은 전동킥보드가 더 무섭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승용차와 전동킥보드 접촉 사고를 찍은 블랙박스 영상을 올리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운전자들은 ‘자라니’(자전거+고라니)에 이어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일부 전동킥보드 이용자들은 차도와 인도를 구분 없이 달린다. 사이드미러와 백미러에도 잘 띄지도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등장해 사고 위험성이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킥보드 수요가 늘면서 사고 발생도 잦아졌다. 보험업계와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나 휠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Personal Mobility) 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3년 새 5배로 급증했다. 2014년 40건이던 것이 2017년 193건으로 늘었다. 지난해는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117건으로,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다쳤다. 전동킥보드는 2종 원동기장치 자전거 면허 또는 자동차(1·2종 등) 운전면허가 필요하다. 만 16살 이상부터 관련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 차도에서 “쌩쌩”…차량 운전자·전동 킥보드 이용자 모두 불안

개인형 이동수단은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배기량 50cc 이하의 오토바이와 같은 취급을 받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필요하며 인도나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없다. 도로교통법상 합법적으로 개인형 이동수단을 타려면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차도는 너무 위험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용자들은 주장한다. 개인용 이동수단 전동킥보드는 '부딪치면 중상'이라는데 운전자와 이용자들 모두 공감하고 있다.

전동킥보드를 즐겨 타는 김모(28) 씨는 “보통 시속 20km~30km로 달리고 있다. 인도는 사람들이 많아 부딪힐 위험이 있어 차도로 달리고 있다”며 “법과 제도를 마련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횡단보도. 안전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왼쪽) 지난 17일 오전 5시쯤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울 요금소 인근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한 시민이 헬멧 등 안전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고속도로 진입 구간을 달리고 있다.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는 구간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이 급정거를 하는 등 대형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른쪽)


차량 운전자들도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전동 킥보드가 차 사이사이를 질주하며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커브 길에서 갑자기 등장해 차량 운전자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동킥보드는 도로교통법상 면허가 필요하고, 운전 중엔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동킥보드를 이용자들은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시속 20km~30km로 달린다. 속도도 최대 시속 25㎞로 제한돼 있지만 제어장치를 풀면 기종에 따라 50~70㎞까지 나온다.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최모(34) 씨는 “이것저것 다 따지고, 킥보드 탈수 있을까요? 편리성 때문에 타고, 운전 경험이 없는 사용자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차도로 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활개치는 전동킥보드…음주·무보험·무면허 '사각지대’

실제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은 채 전동킥보드를 타다 사고가 났을 경우 차량 운전자뿐만 아니라 전동 킥보드 이용자도 크게 다칠 수 있다. 전동 킥보드 등은 최대 25km까지 달릴 수 있고 도로교통법상 오른쪽 끝 차로에서만 주행해야 한다.

지난해 9월 광주의 한 보도에서 전동킥보드를 몰던 A(23)씨는 B(45)씨를 들이받아 다치게 했다. 무면허인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273%의 만취 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운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무면허 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사회봉사·준법운전 및 알코올 치료 강의 수강 명령 포함)받았다.

지난해 8월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서구 가좌동 경인고속도로 인천 방향 5.7㎞ 지점까지 8㎞가량을 무면허 상태에서 술에 취해 전동킥보드를 탄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수치인 0.15%였다. 음주 운전으로 3차례나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A씨는 운전면허가 취소돼 무면허 상태였다.

지난해 6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60대 남성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다가 숨지는 사고 발생했다.

개인 이동수단 특성상 안전장비를 착용하더라도 몸을 보호해줄 만한 차체가 없다. 한 통계에 따르면 개인 이동수단 사고 시 중상자 비율이 10.8%로 보통 자동차 사고의 4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도로에서도 탈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현실에 맞는 정책 필요

개인 이동수단 활성화되면서 현실에 맞는 정책이 필요한 실정. 차도가 아닌 자전거도로에서도 탈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인 이동수단이 대중화된 해외에서는 각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 면허를 발급하거나, 차도 외 진입을 허용해주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5년부터 개인 이동수단이 자전거 전용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네덜란드는 보험가입을 전제로 차도에서 전동 킥보드 등의 운행이 가능하다. 독일은 2009년부터 개인 이동수단 면허를 신설해 자전거 전용 도로와 차도 주행이 가능하다.

개인 이동수단 산업을 육성·관리·감독 해야 하는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형 이동수단 중 현재 유일하게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전기 자전거뿐. 전기 자전거의 경우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지난 3월 22일부터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기 자전거 이외의 전기 휠이나 전기 스쿠터, 전기 킥보드 등을 위한 법 제도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횡단보도. 안전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한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동안 전기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하여 면허를 취득하고 도로를 통행해야 했다. 모든 전기자전거가 자전거도로를 통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기 자전거에서 페달을 밟을 때 전기모터로 동력을 보조해주는 페달보조시스템(PAS) 방식이나 오토바이처럼 손잡이를 당기면 앞으로 가는 스로틀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만 도로교통법상 인정된다.

전문가들은 전동 킥보드 사고 위험성을 줄이고 안전한 운전을 위해 관련 법규와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따르면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며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고 지적했다. 이어 “이용자 스스로가 안전을 위해 헬멧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제어장치를 풀지 말아야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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