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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남녀평등 향한 튀니지의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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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20 21:30:08 수정 : 2019-03-26 16: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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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맞게 쿠란을 새롭게 해석 / 역사의 방향 놓고 보수·혁신 줄다리기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일당 독재를 무너뜨리고 ‘아랍의 봄’을 열었던 튀니지에서 민주 사회를 향한 개혁 실험이 지속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지난 13일 여성의 날을 맞아 튀니지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은 상속의 남녀평등을 위한 민법 개정을 지지한다고 발표하면서 치열한 사회 논쟁에 불을 붙였다. 기존 민법은 남성에게 여성의 2배의 지분을 보장하는데, 이 불평등 조항은 쿠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손대기 어려운 성역으로 인식됐다.

 

튀니지는 21세기 들어 민주화의 등불로 부상하기 이전부터 아랍 세계 근대화를 앞장서 주도해 왔다. 1956년 독립하면서 이슬람 권역에서는 독보적인 선진 민법을 제정했다. 대표 사례로 일부다처제를 불법으로 규정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일찍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1926년 일부다처제를 금지한 터키에 이어 이슬람 세계에서 두 번째였다.

 

터키가 선진 근대 국가의 기준을 들어 일부다처제를 금지했다면 튀니지는 쿠란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째, 쿠란은 일부다처제에 관한 다양한 제약을 정했다. 따라서 그것은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없애야 하는 임시방편이었다는 해석이다. 둘째, 쿠란은 모든 부인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명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사실상 일부다처제를 금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다.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터키와 튀니지의 방식이 달랐고, 쿠란을 해석해 민법을 만드는 방법도 튀니지와 다른 이슬람 국가는 달랐던 셈이다. 이처럼 과거 튀니지는 일당 독재였지만 여성 의원의 비중이 25%를 넘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여권(女權)이 강한 국가였다. 이번 상속 관련 개혁은 이런 진보적 토대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물론 상속에서 남녀평등은 사회의 전통과 균형을 깰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보수 세력은 여론의 다수가 현상유지를 바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등 이슬람 권역에서는 재산 상속과 결혼 전략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재산이 가문에서 새나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친척 간 결혼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사촌 간 결혼이 빈번하고, 일반적으로 친척 간 결혼이 전체의 40∼50%나 차지할 정도다. 남녀 상속지분의 평등화는 이런 전통 균형에 강한 충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해 강력한 사회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2010년대는 아랍의 봄으로 희망차게 시작했지만 현재 결과는 참담한 형편이다. 시리아와 리비아는 내전의 혼란으로 빠져들었고, 이집트에서는 민주화가 결국 군부 독재로 귀결됐다. 심지어 근대화의 모델이었던 터키마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 체제가 굳어지면서 사회가 퇴보하는 모습이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튀니지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사회도 다른 문화권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보수와 혁신의 세력이 역사 방향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일부다처제의 다양한 해석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종교 성전을 현대 민법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시대에 맞게 해석해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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