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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종걸·황교안… 엇갈린 운명 앞에 선 '세 친구'

입력 : 2018-07-27 07:31:43 수정 : 2018-07-27 09: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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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스토리] 얽히고 설킨 인연 화제 지난 24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원)의 빈소. 황교안 전 총리가 정치의 영역에서는 정반대에 섰던 친구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애석하기 짝이 없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애도했다. 황 전 총리는 노 의원과의 과거 인연을 언급하자 “안타깝다. 같이 잘 모시기 바란다”고 답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또 다른 친구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지난 23일 빈소를 찾아 “마지막까지 저의 스승이자 정치적 기준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세상을 같이 만들자고 했던 그 믿음을 노 의원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꼭 그 뜻을 같이 실현할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의원과 이 의원, 황 전 총리는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경기고 72회 동기동창인 ‘50년 지기 친구’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랐던 세 친구는 엇갈린 행로를 걸어오며 한국 사회의 큰 흐름을 상징했다. 이들은 각자 ‘학출 출신 노동운동가’ ‘인권변호사‘ ‘공안 검사’로 다른 길을 걷다가 정치권에 들어와선 진보진영과 민주당 계열, 보수진영의 주요 인사로 부상했다가 또 다른 미래의 문 앞에 섰다.

얽히고설킨 인연을 이어온 50년 지기 ‘세 친구’에게 그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들의 미래 행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노회찬·이종걸 ‘민주화 운동’ vs 황교안 ‘학도호국단 연대장’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1973년 경기고에 입학한 노 의원은 동창 이 의원과 함께 교내에서 유신 반대 유인물을 뿌리기도 하고,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이 발생하자 수업 거부를 주도하는 등 고등학생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힘썼다.
경기고등학교 72회(1976년 졸업) 동창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 고(故)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왼쪽부터). 출처=경기고 졸업사진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엄격히 얘기하면 같이 한 것이 아니라, 노회찬 친구가 주도하고, 만든 것에 제가 따라갔던 친구였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이 다 기획하고 한 것에 대해 함께 했던 기억에서 당당하고, 어린 소년 시절에도 지금 보이는 모습들이 남아있다”고 회고했다.

반면 황 전 총리는 1∼3학년 모두 반장을 지낸 모범생이었고, 지금으로 말하면 학생회장인 학도호국단(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고등학교 때부터 각인시키려고 만든 군대식 학생 조직) 연대장을 맡아 두 사람과 대조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종걸과 황교안은 사시 합격...노회찬은 노동운동

1976년 고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낙방한 노 의원은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고 본격적으로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죄로 꽤 긴 시간 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도망을 다니기도 했다. 이후, 진보정치연합의 대표로 대선에 나선 권영길을 지원하면서 제도권 정치로 들어섰다.
2015년 6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예방, 악수하며 등을 두드려 주고 있다. 뉴시스

반면 이 의원과 황 전 총리도 한 해 재수 후 1977년 나란히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법대에 진학한 황 전 총리는 곧바로 고시반에 들어가서 사법시험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행정학과로 진학해 학생 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이 의원은 제대 후 다시 시험을 쳐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이후 두 사람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으로 다시 만나게 됐지만 황 전 총리는 공안검사로, 이 의원은 인권 변호사로 엇갈린 길을 걸었다.

◆노동운동 구속된 노회찬과 공안검사 황교안의 조우

노 의원과 이 의원은 대학진학 이후 노동운동가와 인권변호사로 진로가 엇갈렸다. 그런데도 1990년대 초반 노 대표가 노동운동 관련 수사를 받을 때 이 의원이 나서 변호를 맡았고, 노 대표의 결혼식에서 이 의원은 피아노로 축가를 연주하는 등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이 의원은 노 의원의 비보가 전해진 다음 날인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양심수와 변호사로, 도망자와 숨겨주는 사람으로, 운동권 대표와 정치인으로, 둘 모두 국회의원으로 관계는 달라졌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좋은 벗이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진보와 보수라는 확연히 갈린 가치관을 갖고 있던 노 의원과 황 전 총리는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알려졌다. 다만 노 의원이 1989년 겨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당시 공안검사였던 황 전 총리가 노 의원을 자기 방으로 불러 포승줄과 수갑을 풀어주고 커피와 담배를 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때 황 전 총리의 “어떻게 지내냐”는 인사에 노 의원이 “서울구치소가 새로 옮겨서 겨울에 덜 춥고 괜찮다”고 하자, 황 전 총리는 “그게 문제다. 서울구치소 지을 때 내가 가서 ‘구치소라는 게 이렇게 따뜻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농을 주고받았다고 전해진다.

황 전 총리와 이 의원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이 의원은 황 전 총리가 노무현 정부 시절 공안통이란 이유로 두 차례나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누락됐을 때 “옷 벗지 말고 조금 견디라”고 위로했고, 검사장 승진심사 전에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게 황 전 총리의 전화를 바꿔준 사람도 이 의원이었다.

◆노회찬 vs 황교안…악연의 시작 ‘삼성 X파일 사건’

진보와 보수의 가치로 확연히 갈렸던 노 의원과 황 전 총리의 ‘악연’은 2005년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 때 시작됐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한 이듬해 8월 삼성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떡값검사’ 명단을 폭로했다. 하지만 수사를 지휘했던 황 전 총리(당시 서울지검 2차장 검사)는 도청 녹취록을 폭로한 노 전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대신 혐의 선상에 오른 인물들에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 의원은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치른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3년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유죄 선고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노 의원은 대법원판결에 대해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라며 반문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친구’에서 ‘적’으로

까까머리 고등학생이던 ‘세 친구’는 40여년 만인 2015년 황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에서 ‘적’으로 만났다. 비정한 정치의 영역에서 이미 세 친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른 길, 진영에 서 있었다. 한 사람(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 한 사람(이종걸)은 제1야당 원내사령탑, 한 사람(노회찬)은 청문위원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지난 2015년 국무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을 끝낸 황교안 후보자가 밝은표정으로 웃으며 야당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 자리에서 노 의원과 이 의원은 ‘고교 친구’인 황 전 총리에 대해 “총리 자격이 없다”며 반대했다. 황 전 총리 임명동의안이 처리된 날에도 두 사람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의원은 본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3기 정부는 메르스 전염병을 막지 못하는 정권, 담마진(두드러기) 같은 질병으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문란해지는 정권이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축하는 고사하고 황 전 총리의 병역면제 사유가 된 질병인 담마진과 메르스를 빗대 신경전을 펼친 것이다.

노 의원도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 전 총리가 ‘총리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황 전 총리는) 청문회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의로 국회의 검증을 방해했다. 사실상 공무집행방해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탄핵 정국에서 격화한 노회찬·황교안의 악연

노 의원과 황 전 총리는 2016년 탄핵 정국에서도 극적으로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노 의원은 “대한민국의 실세 총리가 있었다면 최순실이다. 나머진 다 껍데기다. 알고 계시지 않나”라고 물었고, 황 전 총리는 “그렇게 속단할 일 아니다. 국정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에 노 의원은 “속단이 아니라 뒤늦게 저도 깨달았다. 지단이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2017년 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7차 본회의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황교안(오른쪽)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기한 연장을 촉구하고 나선 노 의원은 “황교안 대행이 박근혜 개인을 위한 대행이 아닌 만큼 공정성을 가져 특검 연장을 허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감”이라고 주장하며 “황교안 대행과 고교 동창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노 의원은 포털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 측으로부터 정치자금 4000만 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다가 숨지면서 이승의 행보를 멈춰 세웠다. 민주당 정치를 이어온 이종걸과 보수진영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황교안의 행로는 어디로 향할지, 먼저 떠난 노회찬이 먼 곳에서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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