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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 보급, 몸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낳다

입력 : 2018-07-27 03:06:45 수정 : 2018-07-27 03: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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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박물관 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 통해 본 변천사 / ‘몸과 마음은 하나’ 전통적 인식서 / ‘몸은 물질, 마음과 별개’로 바뀌어 / 해부학 서적 번역 되며 급격 확산 / 안면근·복근·승모근 등 명칭 등장 / 전두골·호접골 같은 뼈 이름 생겨
“체육이라고 하는 것은 건전한 신체로 건전한 정신을 넣어 완전히 생활하자는 목적인데…” 말하자면 입 아픈 이런 말 속에 몸과 마음을 보는 시대적 변화가 담겨 있다고 하면 의아해할 수 있다. 마음의 수양을 통해 몸의 건강을 꾀했던 전통적인 시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양 의학의 도입과 함께 급격하게 바뀌고 있었다. 1910년대에 나온 소설 ‘명월정’에서 가져온 이 구절에서 몸을 먼저 단련해야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변화된 시대상을 포착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일체로 여기는 전통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몸을 직접 들여다보며 수술하는 서양 의학의 접근 방식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국립한글박물관이 10월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는 서양 의학과의 만남이 몸에 대한 우리말과 전통적인 사고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소개한다. 문자, 언어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에 어떻게 맞물려 가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서양 의학의 보급, 몸과 마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다

몸과 마음을 일체로 본 전통적인 인식은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활용한 조선시대의 법의학 제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1902년 9월 강원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피해자 이경화의 시신을 확인한 뒤 작성한 검시 보고서에는 “정수리와 머리 좌우편, 숫구멍, 이마는 황백색이고 눈썹과 관자놀이, 미간은 청황색을 띠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겉으로 드러나는 시신의 상태만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몸이라도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 의학이 도입되면서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 소개되었다. 새로운 지식의 도입은 새로운 문자와 언어의 확산을 낳았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그러나 서양에서는 몸은 물질일 뿐이고 마음과 별개로 여겨 몸을 열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을 치료에 이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런 접근방식은 서양 의학이 도입되면서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특히, 해부학 교과서가 번역돼 보급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893년 입국해 40년간 한국에서 지낸 캐나다 의사 에비슨은 한글 의학 교과서 여러 권을 펴냈다. 책을 낼 때 에비슨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언어 문제였다. 서양 의학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명칭, 개념 등을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그는 영어에 능숙했던 김필순을 만나면서 ‘해부학’, ‘신편화학교과서(무기질)’ 등을 번역했다. 이후 ‘신편생리교과서’, ‘진단학’, ‘병리통론’ 등의 책이 나왔다. 
동의보감에 실린 인체 그림.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는 것은 전통의학의 전제로 이에 따라 관련 지식을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몸에 대한 새로운 이해, 낯선 말들과 만나다

서양 의학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몸에 대한 새로운 말들이 쏟아졌다. 이 중 상당수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으나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없지 않았다.

예쁜 몸을 만드는 데 관심이 커지면서 더욱 일반화된 근육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대표적이다. ‘안면근’, ‘복근’, ‘승모근’, ‘이두박근’ 등은 이때 새롭게 등장한 단어다. 몸을 직접 들여다보는 데 익숙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는 신체 부위 각각의 근육을 지칭하는 이런 말들이 생길 여지와 필요가 없었으나 서양 의학이 도입되면서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뼈와 관련된 단어도 마찬가지다. 동양에서는 뼈를 365개라고 했는데, 직접 관찰한 뒤에 얻은 정보라기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몸을 서로 대응시킨 철학적인 의미의” 숫자였다. ‘증수무원록언해’라는 책에는 “사람이 365개의 마디가 있는데 천체가 궤도를 따라 한 바뀌를 도는 365도와 대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신체를 해부한 서양에서는 관찰 결과로 얻은 지식에 따라 ‘전두골’, ‘후두골’, ‘호접골’ 등 각각의 뼈에 이름을 붙였다.

물론 전통 의학 지식에서 비롯된 언어습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옛 사람들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여겼다. 중국의 고전 ‘열자’에는 두 사람의 심장을 바꾸었더니 마음, 즉 정신도 바뀌어 서로의 집을 찾아 가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장에 대한 이러한 사고는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에도 남아 있다. ‘마음이 약하고 숫기가 없다’는 의미의 ‘심장이 약하다’, ‘마음이 들떠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염통(심장의 순우리말)에 바람 들다’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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