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자리 유충은 하나같이 물에 살지만 명주잠자리는 유별나게 강가 모랫바닥에서 개미귀신이라는 유충 시기를 보낸다. 명주잠자리는 몸길이가 4cm 남짓으로 어두운 갈색에 길쭉한 막대 모양을 하고 두 쌍의 날개는 매우 길어 실잠자리를 닮았다. 주로 산기슭 숲 속에 살며 암컷은 꼬리 끝에 있는 산란관(産卵管)으로 모래를 파고서는 알을 낳고, 그것이 허물을 벗어 개미귀신이 된다.
개미의 천적은 도마뱀, 개구리, 새들이다. 하지만 사실 개미의 가장 큰 천적은 개미귀신이다. 개미귀신의 몸은 뚱뚱한 방추형이다. 몸길이는 5mm쯤으로 날개는 없고, 배는 매우 통통하며, 가슴부에 세 쌍의 다리가 붙어 있다.
개미귀신의 모래집은 깊이 5cm에 위쪽 가장자리 지름이 7.5cm 정도 된다. 개미귀신은 몇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이상 걸려 깔대기꼴이나 절구통 모양의 구덩이(함정)인 개미지옥을 이곳저곳 만들고, 그 밑의 모래 속에 숨어서 개미나 다른 작은 벌레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기를 몇 날 며칠 기다린다. 한번 빠진 개미는 개미지옥의 구조상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다. 결국 지쳐 더 이상 아무 힘도 남지 않게 되면서 속절없이 개미귀신의 먹이가 된다. 개미귀신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인 명주잠자리가 되는 동안 수백 마리의 개미 따위를 잡아먹는데 이런 한살이가 완성되는 데 보통 2~3년이 걸린다.
이렇게 힘든 성장과정을 이겨낸 개미귀신만이 비단날개를 가진 멋진 명주잠자리가 된다. 그렇다. 우리 인간도 어려움을 극복해야 만이 밝은 미래가 있지 않던가.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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