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진 건축가의 에세이 ‘진심의 공간’에 나온 한 구절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단골집을 찾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새로운 장소가 주는 신선함, 익숙한 자리에서 비롯한 안정감 등 좋은 공간은 어느새 우리네 일상에 스며들어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건축을 주제로 한 코너는 아닙니다. 공간 자체의 특별함과 함께 공간에 얽힌 사연, 사람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소소하다’는 단어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지만, 소소한 공간은 ‘작지만 소중한 장소’를 말합니다.
공간과 관련한 자신만의 사연을 공유하고 싶다면 samenumber@segye.com으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동네 공원 벤치 등 건물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소소한 공간입니다.

두 시간쯤 앉아 지켜보니 대다수 손님이 카페 사장에게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돌아오는 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오셨어요?”라는 과묵한 답변. 그래도 손님들은 카운터 앞을 서성이며 계속 사장에게 말을 붙인다. 청색 앞치마를 두른 청년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짧은 대답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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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조율소. |


카페 안쪽에는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내부는 온통 짙은 커피색 원목의 앤틱 가구와 장식물로 가득 채웠다. 하얀 벽면과 곳곳에 놓인 초록빛 다육식물 화분들, 말린 꽃다발, 석재 바닥이 원목과 묘한 조화를 이뤄 안정감을 연출했다. 천장의 레일 조명이 카페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혔고 카운터 안쪽 주방은 앤틱 샹들리에가 명도를 담당했다. 좌석 15개 내외의 작은 카페였다.
마침 공간을 다루는 연재 기사를 구상하던 차였다. 잘됐다 싶어 냉큼 ‘기자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카페 연지 얼마나 되셨어요?” “사장님 혼자 운영하세요?” “카페 이름이 특이하네요” 등. 돌아온 대답은 “1년 정도요” “네” “그렇죠”, 역시 단답형이다. 기사를 쓰려면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벌써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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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조율소의 청년 사장 신도섭씨. 인터뷰 내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으며 쑥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과묵한 청년은 31세의 신도섭씨. 줄곧 쑥스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신씨는 인테리어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진로를 고민하던 중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보고 싶어 카페를 차리게 됐다고 털어놨다. 사람들과 부딪는 기회를 늘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대학 동기 A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같은 과에 몸이 굉장히 약한 친구가 있었어요. 저도 내성적이다 보니 과에서 A와 연락하는 사람이 제가 유일할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날 A가 백혈병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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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조율소의 대표 메뉴 더치 커피와 플랫 화이트. 짙은 갈색의 커피가 앤틱 원목 가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
카페에 대한 궁금증을 풀 차례가 왔다. 가장 먼저 카페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물어봤다. 신씨는 엉뚱하게도 “서울남부법원 근처라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법원을 생각하면 정의의 여신 디케가 든 천칭이 떠올라요. 사람들 사이의 일을 조율한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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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사장 신도섭씨가 직접 디자인한 원목 테이블. 다리 없는 ‘ㄴ’자 모양의 테이블을 벽면에 부착해 넓지 않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
문득 “아들∼”을 외치던 건너편 동태탕집 사장님이 생각났다. 혹시 건물주 어머니를 둔 ‘금수저 청년 사장’은 아닐까. 이에 신씨는 웃으며 “친어머니는 아닌데, 아들처럼 생각해주셔서 그렇게 부르셔요”라며 “카페 공사할 때부터 거기서 식사도 많이 했고 상권에 대한 조언도 구했어요. 주변 가게 사장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에요”라고 해명(?)했다.
신씨는 카페 운영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손님들에게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꼽았다.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놨을 때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느낌이 좋아요”라며 “커피가 맛있다고 해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을 받아요. 카페에서는 커피를 맛있게 먹고, 즐겁게 얘기하는 것. 그 두 가지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카페 대표 메뉴는 더치 커피와 플랫 화이트. 더치 커피는 깔끔한 신맛과 깊은 풍미가, 플랫 화이트는 우유와 진한 에스프레소의 부드러운 조화가 느껴졌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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