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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였는가

입력 : 2018-05-05 03:00:00 수정 : 2018-05-04 2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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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지구촌 뒤흔든 사상가이자 혁명가 / 탄생 200돌 맞아 새롭게 조명한 평전 / 폭력 선동 공산혁명은 그의 뜻과 달라 / 저자 “그는 마르크스주의자 아니다”/ 동지인 엥겔스의 ‘사상 대중화’ 산물 환상 걷어내고 인간 마르크스에 접근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홍기빈 옮김/arte(아르테/8만원)
카를 마르크스/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홍기빈 옮김/arte(아르테/8만원)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난 지 200주년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프로이센과 프랑스 경계 지역인 라인란트 트리어에서 태어나 노동자와 역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0세기 역사는 온통 마르크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한때 예수, 공자, 석가모니를 능가했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만일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맹점을 제대로 지적한 사람이 있었을까. 있었다 하더라도 전 세계의 절반을 공산혁명으로 집어삼킬 만큼의 사상적인 흡인력을 갖고 있었을까.

마르크스는 결정적인 오류, 즉 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무신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인간소외), 역사를 잘못 해석해(유물사관) 스스로 무너졌다. 보수진영에서는 20세기 지구촌을 둘로 쪼개 놓은 폭력적 공산혁명의 원조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비판에 대해 “20세기는 엉뚱한 마르크스주의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며 강력히 반기를 든다. 런던대학 퀸메리칼리지의 사상사 교수이자 케임브리지대 ‘역사 및 경제센터장’을 맡고 있는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Gareth Stedman Jones)는 11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에 마르크스의 변명을 담아냈다. 한마디로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평생의 지기이며 지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역사관과 노동 개념은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 관념론의 전통과 영향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즉, 칸트의 인간 이해와 헤겔의 역사 해석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지금의 ‘마르크스주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했다. 즉,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현대 공산혁명은 마르크스 본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기 얼마 전 마르크스는 그의 사위 폴 라파르그에게 “만약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런던대 교수인 저자는 “마르크스만큼 현대 자본주의의 맹점을 제대로 지적한 철학자는 없었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폭력적 공산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르크스는 왜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을까? 애초 마르크스주의는 1870년대 중반 친구이자 동지였던 엥겔스의 ‘마르크스 사상 대중화’ 작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풀어보면 188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과 1890년대의 제2인터내셔널(혁명)의 요구에 부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것. 1870년대 만년의 마르크스는 러시아 ‘미르’와 같은 촌락공동체에 희망을 걸었다. 미르는 말 그대로 공동체 사회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과 같은 사회로 풀이할 수 있다.

“전체와 개인의 모순이 사라지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통합을 통해 모든 소외(차별)가 극복된 사회, 노조의 분파적 이익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갇힌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단결과 연대의 단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온갖 참극을 막아 낼 수 있는 크고 작은 촌락 공동체.” 과연 이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와 부인 예니.
이 책에서 저자가 펼치는 일관된 논지는 마르크스를 오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니체가 반유대주의의 선구자로 오해된 것처럼 말이다. 이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왜곡해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유대주의와 인종 학살을 저지른 나치즘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훗날 니체 연구자들은 니체에 씌워진 누명을 벗겨낸다.

저자는 “마르크스는 1880년대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와 칭칭 엮이는 바람에 여러 오해와 무시를 겪고 있다”고 했다. 1848년 마르크스가 만든 ‘공산당선언’에는 현대인들이 이해 못할 언어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가족공동체 해체 또는 부인공유제 같은 엉뚱한 용어들이다. 이것들만으로 마르크스 이론을 폄하할 수는 없다.

적어도 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인간 차별과 노동 착취적 자본구조, 활개치는 천민자본주의 등을 배경으로 마르크스는 그의 이론을 펼쳐냈다. 제국주의 침략에 신음했던 동유럽과 아시아, 남미 대륙은 공산당선언에 열광했다.

마르크스 사상이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자멸해버린 지금, 마르크스가 현대 지식인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사상가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극화의 심화, 반복되는 외환위기, 경기침체, 인간 차별 등 현대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한 현대 문명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체제는 과연 무엇인가. 현대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이달 들어 마르크스를 인간적으로 재조명하는 서적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지만, 그의 이론의 맹점을 제대로 지적해내는 수준 높은 저서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르크스사상과 당시대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내세운 정반합 변증법적 논리나 사적유물론 등이 인류를 더 큰 파멸로 내몰았던 사실이 희석될 수는 없다. 마르크스 이론을 빌린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이 수립했던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소련)이나 중국공산당, 조선노동당에 대해 마르크스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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