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공동체적 속성
서로 소통하면서도 갈등
현실은 낭만·감상의 충돌 바람이 상긋한 봄날이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떼고 싶다. 하지만 우리 일상은 이러한 낭만적 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의 삶은 노래 가사처럼 ‘불안한 행복’이고 ‘힘겨운 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낭만적 경향은 ‘새로운 꿈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우리를 떠다밀곤 한다.
김광석도 이러한 낭만적 이상과 일상의 고뇌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그것을 노래로 표현하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일생에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다. 그가 팝 음악계의 전설로 살아 있는 한 그럴 것 같다. 전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샘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음미하며 그가 삶에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가 겪었던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고통을 유사 체험할 수 있다. 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진실도 이런 과정에서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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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
감상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은 서로 소통하면서도 갈등한다. 감상주의가 자기중심적이라면 낭만주의는 공동체적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을 지닌다. 감상주의가 수동적이라면 낭만주의는 능동적이다. 낭만주의자에게 중요한 건 자유다. 그것이 능동적 도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반면 감상주의자는 종종 자유를 담보 잡히면서까지 연민과 동정을 유발하고자 한다. 자기중심적 실리를 위해 인연에 약하고 그것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감상적인 것의 극단은 일으켜 세워줄 것을 기대하고 넘어지는 것이며 위안을 부르는 고뇌인 것이다. 인연은 우리를 일상에 붙들어 맨다. 그런데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향한 길이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사회 참여든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탁월한 대중예술가는 현대문화의 영웅이다. 라이브 콘서트의 ‘작은 거인’ 광석도 대중적 영웅이었다. 영웅은 사랑에 빠지면 행복할지라도 자유의 훼손에 괴로워한다.
‘변해가네’는 보컬그룹 ‘동물원’의 1집 앨범에 실렸던 곡이다. 광석은 이 노래를 솔로 가수로 생전에 내놓은 6개 음반 가운데 마지막인 ‘다시 부르기 II’에 실었다. 여기서 그는 ‘동물원’ 때와는 전혀 다른 창법으로 부른다. 서른두 살 짧은 인생의 말기에 자기 인생 전체의 고뇌가 서려 있듯이 부른다. 그렇구나, 이 노래는 ‘사랑과 일상의 애정 때문에 고민하는 낭만적 영웅’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이것은 영웅적 결연함의 전형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낭만적 열정 없이 이러한 다짐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모든 것이 변해가네.” 사랑은 블랙홀이다. 낭만적 영웅의 비극적 순간이다.
낭만적 영웅이 사랑에 빠져 한 여인의 짝이 되고 나서도 ‘변해가네’를 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여인도 낭만적이어야 한다. 사리사욕에 집착하지 않고 반복적 일상에 자유를 담보 잡히지 않으며, 세상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의연히 나서야 한다. 낭만적 영웅은 낭만적 여걸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낭만적 영웅과 감상적 일상이 충돌한다. 광석에게도 그랬을 것 같다. 음악에 대한 문학적 사유는 상상력을 동반한다. 허구이다. 하지만 모든 허구가 그렇듯이 진실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창구이며, 우리 일상을 성찰하는 화두가 된다.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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