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휴가를 내고 오랜만에 유럽여행을 다녀온 40대 직장인 A씨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둘러보던 중 문득 10여 년 전, 대학 시절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종이지도 든 채로 이곳저곳 다니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한때 여행객의 필수품이었던 종이지도가 기술 발달로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온라인 지도의 활성화로 이제는 선택이 되었다는 생각에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여행객 포스’를 내뿜던 젊은 날의 자신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림이 되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A씨는 “여행지에서 종이지도 든 사람을 거의 못 본 것 같다”며 “버튼만 누르면 지도가 스마트폰 화면에 뜨고, 손가락 두 개로 오므렸다 폈다만 하더라도 축소와 확대까지 가능하니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다니면서 사회시간에 봤던 사회과부도도 생각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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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가 발행한 관광안내지도 일부. 명동거리 관광안내센터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은 종이지도를 찾고 있었다. |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 ‘지도’로 검색하면 수많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화면에 뜬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지도 앱을 다시 받을 수도 있고, 사용 목적에 따라 개별적으로 만든 특수지도도 볼 수 있다. 운전자를 위한 다양한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까지 받아 쓸 수 있게 됐다.
종이지도가 없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오가는 길목에서 종이지도를 펴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방위를 살피고 방향을 가늠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는 지도가 담아낼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종이지도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쓰려고’ 지도를 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 지도코너에서 물건을 둘러보던 여성은 “아이 방에 붙일 세계지도를 찾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진열된 지도를 하나씩 보던 그는 “방에 종이지도를 붙였던 때가 기억났다”며 “‘이 나라에는 뭐가 있고’ 등의 생각을 했는데, 우리 아이도 그렇게 상상력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법 크기가 큰 세계지도를 하나 골랐다.
같은날 만난 다른 중년남성도 이유는 비슷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보는 것도 재밌고, 요즘 뉴스에 이런저런 나라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지도로 위치도 살펴볼 겸 생각하고 있었다”고 웃었다. 이어 “예전에 우리 세대는 여행 떠날 때 지도책을 항상 갖고 다녔다”며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서 스마트폰 하나만 보면 어느 곳이든 지도로 살펴볼 수 있지만 그때는 지도책이 필수였다”고 회상했다.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탄다는 50대 남성은 종이지도도 모자라 곡선계(曲線計·curve meter)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지도상의 곡선 길이를 측정하는 기구를 말하는데, 끝에 달린 작은 바퀴가 지도상의 곡선을 따라 움직이면 회전수가 실제 길이로 환산되어 눈금판에 나타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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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거리 관광안내센터에 비치된 여러 책자. 중구 일대 관광지도 외에도 저마다 특색에 맞게 제작한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도 스마트폰과 종이지도를 동시에 든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살피니 근처 관광안내센터에서 구한 명동, 정동 그리고 남대문시장 등이 포함된 중구 안내지도였다.
미국에서 아들과 온 어느 부부는 “스마트폰을 쓸 수 있지만, 종이지도도 좋은 기념품이 될 수 있다”며 “그림도 예쁘고 안내가 잘 되어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통편 정보는 구글맵으로 볼 수 있다”며 “여기(종이지도)에는 명동만의 특성이 잘 나타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동거리에는 관광안내센터가 총 3곳 있다. 이 중 1곳을 골라 30여분을 살펴본 결과, 수많은 관광객들이 앞에 비치된 종이지도 여러 개를 살피고는 그중 하나를 골라 발걸음을 옮겼다. 진열대를 자세히 보니 명동 거리 지도와 더불어 서울 유명 관광지나 타 지역 관광지를 안내하는 지도와 책자 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커플은 관광안내센터에서 종이지도를 고른 뒤 “설명이 잘 나온 것 같다”며 “하나씩 들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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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거리 입구에 설치된 스마트 관광안내지도. 관계자에 따르면 초기여서 2대 밖에 없지만, 향후 추가 설치 가능성도 있다. 종이지도와 화면으로 보는 지도의 공존이다. |
서울 중구는 끊이지 않는 종이지도 수요를 위해 △ 2014년 도심 관광안내지도(앞면 한영·뒷면 중일 표기) 3만부 제작 △ 2016년 중구 관광안내지도(한영 병기) 2만5000부 제작 △ 2017년 중구 관광안내지도(한영·한중·한일 병기) 6만부 제작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2015년에는 따로 펴내지 않고 전년에 제작한 지도를 썼다”며 “올해도 관광안내지도(한영·한중·한일 병기)를 펴낼 예정이지만 분량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지도 속 꾸준한 종이지도 수요는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SK플래닛이 운영하는 11번가가 2일 세계일보에 제공한 ‘종이지도 연도별 거래액 증가율’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는 전년(2015년) 대비 총 거래액이 29%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는 2016년보다 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보다 증가세는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종이지도 수요가 느는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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