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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삭제될 고은 시인 작품과 인물소개 |
검정교과서는 편찬과 배포, 저작권을 정부가 갖는 국정교과서와 달리 민간 출판사가 펴낸 뒤 검정 심사를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내용 수정과 보완 권한은 발행사와 저자들에게 있고 교육부는 승인 여부만 결정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과서 수정이 승인되면 수정 전후 내용을 학교에 전달해서 교사들이 바뀐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고교 2학년이 내년에 쓸 교과서의 경우 오는 9월 검정을 마무리하고 10월에 전시본이 나오기 때문에 각 출판사와 집필진이 최근 사태를 반영할 시간이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10개 출판사가 교과서에서 고씨 등 3명의 흔적을 완전 지우기로 한 것은 학생 교육에 부적절하다는 판단과 함께 성난 여론을 감안한 측면이 있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성폭력 문화예술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에 찬성하는 응답이 71.1%로 ‘교과서에 계속 실려야 한다’(22.5%)를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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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씨(왼쪽부터) |
고씨의 이미지와 이름, 윤씨의 연극 사진을 삭제하기로 한 A출판사 관계자는 “교과서는 학생의 기본 자료인데,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인물을 가르치는 게 온당한가를 놓고 내부에서 논의했다”며 “대체할 좋은 작품이 많아서 굳이 그들 작품을 고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씨와 오랫동안 교류했다는 시인 B씨는 “잇따른 폭로 내용과 관련한 고씨의 행위를 지금까지 목격한 적이 없다”며 “폭로 내용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가려진 뒤 교과서 삭제를 결정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친일행적에도 불구하고 여러 작품이 교과서에 실린 서정주 시인의 사례를 언급하며, “작품이 문학적으로 가치 있으면 친일행적한 시인의 작품도 소개하는데, 형평성에서 어긋나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C출판사 측은 “사회 분위기상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라 (삭제를) 결정했다”며 “예전 친일행적 작가 문제와는 결이 다른데, 당시는 역사적 상황이 영향을 줬지만 이번에는 개인적 일탈에 가깝다”고 일축했다. 한 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는 “작가와 시는 분리해 봐야 한다거나 작가의 이념과 정서가 묻어 있는 시는 일체성을 따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뉘지만 교과서는 배우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다보니 이런 결정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은·남혜정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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