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 쉬고 있었고 아무것도 안 하려 했었어요. 저를 비워낸 상태에서 이런 작품이 오니 생각할 것 없이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고전을 늘 해보고 싶었거든요. 대학에서 제대로 못 배웠어요. 1학년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요. 고전은 사실 쉽게 다가가기 힘들잖아요. 배우로서의 두려움을 깨보고 싶었어요.”
‘맘마미아’의 사랑스러운 소피이자 ‘레 미제라블’의 가슴 아픈 에포닌이었던 박지연은 이렇게 ‘리차드 3세’의 ‘앤’ 역을 받아들었다. 영화계 스타 황정민이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선택한 큰 무대다. 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희곡이 원작이다. 영국 장미전쟁 막바지 리처드 3세의 비뚤어진 권력욕과 권모술수를 다룬다. 앤은 비운의 여성이다. 랭커스터가 왕세자비였지만 요크가에 패하면서 포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시아버지를 죽인 리차드 3세와 결혼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정치적 쓸모가 없어지자 죽임을 당한다. 박지연은 “증오·분노가 쌓인 상태에서 무대에 처음 등장해야 해 힘들다”며 “가장 어두운 곳, 가시밭길에서 시작해야 하는 캐릭터라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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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3세’로 처음 연극무대에 서는 뮤지컬 배우 박지연은 “그동안 공연 시기가 겹치거나 제 목 상태가 안 좋아 연극 제의를 고사했는데 ‘리차드 3세’는 모든 게 시기적절하게 저한테 주어진 기회 같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우려하며 시작했다”는 박지연은 “연습하면서 걱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사극이 어렵지만, 각색·연출이 잘돼 재밌는 공연이 되리라는 기대가 생겼다고 한다. 상대역인 황정민에 대해서는 “백 가지를 얘기해도 부족하다”며 감탄했다.
“정말 눈이 다르세요. 눈빛이 호랑이 같다고 해야 하나. 하하. 야생의 그 무언가가 있어요. 제 눈빛이 함께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리차드 3세는 다양하게 변하는 인물인데, 선배님은 정말 순간순간 다른 연기를 하세요. 처음에는 앤을 쟁취하려 사탕발림 같은 말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잔인하고 무서워지죠.”


박지연이 연기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지극히 평범하다. 수능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바람에 인생 진로를 바꿨다. 그는 “대학을 잘 가려고 연기를 시작했다”며 “밴드 보컬을 할 만큼 노래를 좋아했기에, 잘하는 걸로 대학에 가면 어떨까 싶어 재수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간 그는 2010년 맘마미아의 ‘소피’로 신데렐라처럼 데뷔했다. 겨우 22살이었다. 이후 행보도 탄탄대로였다. ‘레 미제라블’, ‘아리랑’ ‘원스’ 등 굵직한 작품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6, 7년 동안 그는 눈앞의 작품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다. 지난해 문득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잡을 것은 잡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자 ‘리차드 3세’처럼 소중한 기회도 찾아왔다. 박지연은 관객이 이 작품을 옛이야기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앤이 겉으로 보면 왕의 여자이지만 내면에 고통이 있듯, 우리도 각자 고통을 안고 있다”며 “많은 인물의 성격·관계를 보며 나는 어떤지 살펴볼 계기가 됐으면” 하고 희망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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