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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린 시간들… 마음 비우니 기회 찾아와”

입력 : 2018-02-04 21:03:10 수정 : 2018-02-04 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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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3세’로 첫 연극 도전 나선 뮤지컬 배우 박지연
“연극 ‘리차드 3세’를 하는 데 스케줄이 어떻게 되니?” 뮤지컬 배우 박지연(30)은 지난해 배우 전수경에게 이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겠습니다.” 어떤 역인지, 누가 나오는지 묻지 않았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배우치고는 대담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박지연은 해맑게 “모든 게 시기적절했다”고 말했다.

“마침 쉬고 있었고 아무것도 안 하려 했었어요. 저를 비워낸 상태에서 이런 작품이 오니 생각할 것 없이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고전을 늘 해보고 싶었거든요. 대학에서 제대로 못 배웠어요. 1학년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요. 고전은 사실 쉽게 다가가기 힘들잖아요. 배우로서의 두려움을 깨보고 싶었어요.”

‘맘마미아’의 사랑스러운 소피이자 ‘레 미제라블’의 가슴 아픈 에포닌이었던 박지연은 이렇게 ‘리차드 3세’의 ‘앤’ 역을 받아들었다. 영화계 스타 황정민이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선택한 큰 무대다. 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희곡이 원작이다. 영국 장미전쟁 막바지 리처드 3세의 비뚤어진 권력욕과 권모술수를 다룬다. 앤은 비운의 여성이다. 랭커스터가 왕세자비였지만 요크가에 패하면서 포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시아버지를 죽인 리차드 3세와 결혼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고, 정치적 쓸모가 없어지자 죽임을 당한다. 박지연은 “증오·분노가 쌓인 상태에서 무대에 처음 등장해야 해 힘들다”며 “가장 어두운 곳, 가시밭길에서 시작해야 하는 캐릭터라 어렵다”고 전했다. 
‘리차드 3세’로 처음 연극무대에 서는 뮤지컬 배우 박지연은 “그동안 공연 시기가 겹치거나 제 목 상태가 안 좋아 연극 제의를 고사했는데 ‘리차드 3세’는 모든 게 시기적절하게 저한테 주어진 기회 같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앤이 리차드 3세를 저주하고 원망하지만 그건 껍데기예요. 내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더 커요. 전쟁포로이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사창가로 팔려갈 수도 있고요. 그러니 죽음 아니면 결혼 승낙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우려하며 시작했다”는 박지연은 “연습하면서 걱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사극이 어렵지만, 각색·연출이 잘돼 재밌는 공연이 되리라는 기대가 생겼다고 한다. 상대역인 황정민에 대해서는 “백 가지를 얘기해도 부족하다”며 감탄했다.

“정말 눈이 다르세요. 눈빛이 호랑이 같다고 해야 하나. 하하. 야생의 그 무언가가 있어요. 제 눈빛이 함께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리차드 3세는 다양하게 변하는 인물인데, 선배님은 정말 순간순간 다른 연기를 하세요. 처음에는 앤을 쟁취하려 사탕발림 같은 말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잔인하고 무서워지죠.”
박지연은 “정제된 연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날 것의, 살아 있는 연기를 하시더라”며 “놀라웠다”고 전했다. 황정민은 물론 10여명의 선배 배우들을 지켜보며 연기 욕심도 강해졌다. 그는 “사실 뮤지컬은 나이 들수록, 특히 여자 배우의 경우 입지가 너무 좁아지는 것 같다”며 “선배들과 연습하면서 ‘저렇게 중심을 잡고 천천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천천히 한 작품씩 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선배가 돼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박지연이 연기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지극히 평범하다. 수능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바람에 인생 진로를 바꿨다. 그는 “대학을 잘 가려고 연기를 시작했다”며 “밴드 보컬을 할 만큼 노래를 좋아했기에, 잘하는 걸로 대학에 가면 어떨까 싶어 재수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간 그는 2010년 맘마미아의 ‘소피’로 신데렐라처럼 데뷔했다. 겨우 22살이었다. 이후 행보도 탄탄대로였다. ‘레 미제라블’, ‘아리랑’ ‘원스’ 등 굵직한 작품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사실 주변에서 ‘쟤는 노력 안 해도 잘 풀려’ 하는 오해도 받았어요. 그러니 한편으로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내가 죄지은 게 아닌데 뭔가 미안한 상황이 되고. 저도 정말 열심히, 철저히 준비해서 오디션 본 거거든요. 빨리 시작했다고 더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다음 작품에서 기대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과 싸우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6, 7년 동안 그는 눈앞의 작품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다. 지난해 문득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잡을 것은 잡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자 ‘리차드 3세’처럼 소중한 기회도 찾아왔다. 박지연은 관객이 이 작품을 옛이야기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앤이 겉으로 보면 왕의 여자이지만 내면에 고통이 있듯, 우리도 각자 고통을 안고 있다”며 “많은 인물의 성격·관계를 보며 나는 어떤지 살펴볼 계기가 됐으면” 하고 희망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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