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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정부 양육정책, 현금 지원보다 모자보건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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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2 20:53:49 수정 : 2018-02-02 20: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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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 지원단장 강영호 교수
“아동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은 경제적 자원의 많고 적음보다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울증을 겪는 부모는 질 좋은 양육을 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이 심각해지면 아동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없는 환경에서 자라거나 한쪽 부모 없이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태어난 환경은 달라도 모든 아이들은 주양육자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을 권리가 있고 그러한 조건이 아동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적절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건강을 살피는 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한 해 1조원 이상이 드는 아동수당 제도가 올해 도입되고 중앙과 지방 정부에서 각종 현금성 출산·양육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는 이러한 서비스는 없다. 부모가 된 어른들에게 쥐어주는 현금성 제도만 있을 뿐 ‘모자보건 서비스’가 죽어 있는 나라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2012년 도입한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이 유일하지만 현재의 인력과 예산 규모로는 서울시의 0∼2세 영유아 가정을 모두 포함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사업의 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강영호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2012년 서울시에서 건강 격차 해소 방안으로 산전 및 조기아동 개입프로그램(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을 도입했다”며 “부모와 아이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양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 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강영호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부모의 안정적인 양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출산 후 4주 이내에 관할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한 뒤 서면으로 심리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를 토대로 간호사가 각 가정을 방문해 부모와 아기의 건강을 살피고 부모 교육을 실시한다. 보통 1회에 그치지만 산모가 우울 증상을 보이거나 양육의 어려움을 겪을 경우 아동이 만 2세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과 각종 서적 등 육아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가정방문 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냐며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사업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살피는 것”이라며 “부모가 삶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다”고 설명했다. 찾아가는 심리 상담이자 부모교육 서비스인 것이다.

간호사 개개인의 소통 능력에 기대는 게 아니라 호주의 가정방문 프로그램인 ‘매쉬(MECSH) 프로그램’을 적용해 진행한다. ‘매쉬’는 아동발달과 산모건강, 모유수유, 아동에게 도움이 되는 가정환경 조성에 효과가 증명된 프로그램으로 이를 개발한 호주 정부뿐 아니라 미국, 영국 정부도 각국의 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의 모델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8년 ‘한 세대 안에 격차 줄이기’ 보고서에서 국민의 건강 형평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산전 및 아동기 서비스 프로그램을 언급했고, 영국 정부는 2010년 건강 불평등 완화 국가전략 보고서인 ‘공평한 사회, 건강한 삶’에서 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미국 정부의 ‘오바마케어’를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에게 국가보험을 들어주는 정책으로만 알고 있지만 미 정부는 지난 5년간 오바마케어의 일환으로 0∼5세 영유아 가정방문 프로그램(MIECHV)에 15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입했다. 영유아 가정의 건강 문제는 아동의 발달과 직결된 사회문제로, 적은 수로 태어나 향후 큰 부양 부담을 지게 될 저출산 시대의 아이들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잘 자랄 수 있도록 국가가 조기에 개입해 지원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시에서 그나마 이러한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현재 55명의 간호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0개구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의 ‘산후도우미 서비스’는 가사지원에 신생아 돌봄을 결합한 서비스로 저소득층에 한해 이뤄진다. 부모교육을 포함한 지속적인 관찰지원 서비스는 아니다.

강 교수는 “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의 역사가 오래된 남호주 주정부에서는 태어난 아기의 98%가 간호사의 방문서비스를 받는다”며 “서울시의 사업 예산을 전국 기준으로 확대했을 때 한 해 1000억원 정도 예상되는 만큼 이러한 서비스의 도입은 비용문제보다는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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