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1987'이 관객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처원 치안감과 그의 분신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근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9일 방송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영화 ‘1987’의 실제 사건을 돌아보며 당시 사건의 장본인인 두 사람의 근황을 전했다.
박처원 전 치안감은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 해방 후 월남해 1947년 경찰이 됐다.
이후 대공 파트에서만 근무했고 간첩 수사에서는 상징적 인물로 알려졌다. CBS 측은 박 전 치안감이 10년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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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로 불리는 이근안씨가 2012년 12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음식점에서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를 열고, 자신이 고문에 사용한 것과 같은 배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
이근안은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당시 대공분실장이던 박처원의 경호원 역할을 맡았으며, 그의 도움으로 대공업무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85년 고(故)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 인사에게 가혹한 고문을 일삼았다.
이근안은 1999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된 고문 수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대상자의 머리를 뒤로 젖힌 다음 얼굴로 수건을 덮어 물을 붓는 수법으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거나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로 내려치는 방법으로 고문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80대가 된 이근안은 현재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으며,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근안은 "관련된 사람도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미친 놈이 된다"며 인터뷰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안은 박처원의 도움으로 기나긴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1999년 자수했으며, 2000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받았다.
그는 당시 “그 시대엔 애국 행위인 줄 알고 있는데 지금 보니 역적 행위가 됐다. 회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처원은 199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박처원은 자신이 자행한 고문 행위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당뇨 증상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뉴스팀 hms@segye.com
사진=영화 '1987'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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