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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풍속화 ‘풍차를 쓰고 있는 남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특히 정조대에 이르러 담비 털, 다람쥐 털을 비롯하여 양털까지 밀수입된 것이 많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는 상인들의 외화 낭비로, 수입산 털모자 매매를 꼬집어 비판한 내용이 있다. 동관(東關)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 사람들이 애용하는 사오십칸이나 되는 점포에서 오직 털모자만을 사가는 의주 상인들이 우글거렸다고 한다. 겨우 한겨울 쓰고 버리기 일쑤인데, 상인들은 은을 쏟아부어 털모자를 구매하였다고 하니 연암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의 은화가 털모자 집에서 녹을 판이라 했다. 한마디로 수입산 털모자는 겨울 사치품이자 투기품에 가까웠다.
이렇듯 털모자에 대한 문헌 기록은 사치와 폐단, 금지령 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유독 한 가지 일화가 예외인데, 바로 정조대왕의 모자(帽子) 이야기이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성역에 종사하는 실무자와 부역꾼에게 여름 가뭄에는 공사를 일시 중지시키거나 질병 예방을 위한 약을 주었다. 1795년 동지를 앞둔 추운 겨울에는 장인 한 사람당 모자 한 개와 무명 한 필을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저 묵직한 감동이 밀려오는 대목이다. 추운 겨울, ‘백성들의 추위가 나의 추위와 같다’는 정조대왕처럼 우리도 주변 온도를 섭씨 1도씩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안보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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