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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한방이야"…'비트코인 좀비' 된 개미들

입력 : 2017-12-25 18:09:43 수정 : 2017-12-25 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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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거르고 밤잠도 잊은채 시세 확인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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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 사는 회사원 조모(32)씨는 최근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회사 동료의 권유로 1000만원을 투자했기 때문. 조씨는 “주식 증권거래소는 오후3시30분이면 마감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은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돈이 불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잘 시간에도 가격변동 확인을 위해 2시간 단위로 알람을 맞춰놓았다”면서 “주변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혹해서 시작했는데, 괜히 했나 싶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순식간에 투자한 돈이 날아갈까 두렵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최근 가상화폐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대한민국에 ‘비트코인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나이 제한이 없는데다 투자 시 1주가 최소 단위인 주식과는 달리 비트코인은 1억분의 1개, 소수점 8자리까지 나눠서 투입할 수 있어 소액으로도 얼마든지 투자가 가능해 직장인뿐만 아니라 주부, 대학생, 심지어 중고교생 등 10대까지도 열을 올리고 있다. 365일, 24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수시로 시세가 오르내리는 탓에 밤낮없이 가상화폐 가격 변동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비트코인 좀비’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최근 가상화폐 관련 어플 중 상위 10개의 사용자를 분석한 결과, 10월30일~11월5일에는 14만명에 불과했으나 12월11일~17일에는 102만명으로 무려 7배나 뛰어올랐다. 이들은 하루에 102회나 가상화폐 어플을 실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자 연령대는 30대(32.8%)가 가장 많았고, 20대(26.9%), 40대(19.5%), 50대 이상(12.9%) 순이었다. 10대 이용자도 7.9%를 차지했다.

큰 폭으로 등락하는 비트코인 때문에 불면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비트코인은 지난 8일 2450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뒤 이틀 만에 40% 폭락해 1500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직장인 심모(31)씨는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5000만원 중 3000만원 가량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자기 전에 ‘한 번만 가격 보자’라는 마음으로 거래소 사이트를 접속한다. 그러나 등락을 쳐다보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 임박해온다. 한숨도 못자고 출근해 회사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도 부지기수다”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가상화폐 중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가격은 2000만원 수준. 그래서 일부 투자자들은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시세 변동이 큰 잡(雜)코인에 몰리고 있다. 잡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화폐를 제외한 대안코인(Alternative coin·알트코인)을 부르는 말로, 전세계에서 현재 거래중인 가상화폐의 종류는 1300여개에 달한다. 잡코인 여러 종류에 5000만원을 분산투자했다는 직장인 김모(38)씨는 “잡코인은 하루에도 잘만 하면 수익이 수십배는 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투자했다. 그러나 잡코인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조작’이 가능하다고 해서 불안하다. 현재 꽤 손해를 본 상태라 원금만 회수할 수준만 되면 손을 털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상화폐 투자 광풍에 대해 사회경제적인 불안과 이에 따른 한탕주의 풍조, ‘돈이면 다 된다’식의 물질만능주의가 합쳐진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헬조선’이나 ‘흙수저’,‘N포세대’ 등의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의 젊은 층들이 ‘열심히 하면 된다’는 희망이 사라지다보니 앉아서 한순간에 몇 달치 월급을 벌 수 있는 가상화폐 투기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라면서 “‘내가 투자하면 된다’식의 긍정적인 면만 보는 ‘낙관적 편향’ 때문에 좋은 전망만 바라보는 심리도 한몫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접근성이 용이하고, 소액도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투자가 가능하다보니 위험성이 높음에도 빠르게 중독되는 것”이라면서 “도박 심리, 사행심리, 불안심리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는 2015년 청소년 정직지수를 조사하면서 10대들에게 ‘범죄의 대가로 10억원을 받는다면 1년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한 바 있다. 초등학생(2012년 12%, 2015년 17%), 중학생(2012년 28%, 2015년 39%), 고등학생(2012년 44%, 2015년 56%)까지 모두 수치가 점점 오르는 추세다. 특히 고등학생은 절반 이상이 돈을 위해서라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한 것이다. 10대들도 비트코인 투기 광풍에 동참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10대들이 어릴 때부터 ‘돈이 최고’라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사실 물질만능주의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체면을 중시해 설문조사에서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 반면, 우리 10대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솔직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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