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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우주의 전환점을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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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25 23:51:34 수정 : 2017-12-25 23: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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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이 되면 해가 방향 틀어 / 한 해의 끝 지나 새해 시작해 / 우리 사회도 지나간 과거보단 / 미래 위한 전환의 실마리 필요 동해의 떠오르는 아침해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법열에 들어가 있는 석굴암의 본존상, 인류가 구현해 낸 최고의 석조예술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 본존상이 앉은 방향에 대해 황수영 박사는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견해를 1960년대에 밝혔고, 이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동해의 대왕암과 석굴암을 호국불교, 왜(倭)의 침략에 대한 수호, 진골 김씨 왕조의 안녕을 비는 기복신앙,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설화 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뒤에 정확하게 방향을 측정한 결과, 석굴암 본존상의 방향은 ‘동동남 29.4도’이고, 그곳에서 대왕암의 위치는 ‘동동남 28.5도’인 것이 밝혀졌다.

작은 차이인데 그게 그것 아닐까 라고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생전의 김원용 박사는 석굴의 위치 선정은 ‘호국용’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 성격일 것이라며 황수영 박사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남천우 박사가 석굴의 정확한 방향은 동짓날 해 뜨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견해를 발표한 이후 많은 사람이 이에 동감을 하고 있다. 아주 옛날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을 한 해의 끝이 아니라 새해의 시작으로 보고 동짓날 아침 왕과 신하들이 떠오르는 태양에 예배를 올려 그해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렇기에 신라인들도 석굴암 부처가 한 해를 시작하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앉으시어 그의 위력으로 바다의 독룡을 제압하고 온갖 귀신을 항복시켜 나라와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유럽에서는 성탄절이 동지축제를 대신하고 있는데, 신약성서에 예수가 탄생한 날짜가 나오지 않는데도 12월25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리는 것은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 미트라교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동지가 되면 해가 방향을 틀기 위해 사흘간 멈춰 있다가 사흘 뒤인 12월25일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이날을 예수 탄생일로 기린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움터 자란 로마제국의 경우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했고, 그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다고 한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동서양의 이런 관념을 종합해 보면 동지는 태양으로 볼 때 한 해의 끝을 지나 새해를 시작하는 기점이었다. “동짓날에는 태양이 남쪽 끝에 있다(冬至之日日南極)”고 ‘춘추좌전(春秋左傳)’ 주소(注疏)에 있듯이 동지는 낮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기에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생겨나고 생물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역사상 주역에 가장 달통한 학자로 알려진 송(宋)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은 동짓날 한밤중 자시(子時) 반에 하나의 양기가 처음으로 나온다고 주창해 이 설이 정설이 됐다. 동지야말로 그동안 자라던 음이 끝나고 양이 시작되는, 말하자면 음양의 전환으로 새로운 기운이 시작하는 때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역경(易經)’에서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동지의 괘를 복괘(復卦)로 삼았다. 복괘라고 하면 맨 밑에 막대기 하나가 있고 그 위로 중간이 터진 막대기 다섯 개가 나란히 위로 쌓여 있는 괘인데, 그 모양에서 보듯 꽉 찬 음(陰)을 뚫고 막 양(陽)이 자라기 시작한 형상이다. ‘복(復)’은 ‘돌아온다’는 뜻인데, 본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위에서 극에 달하면 아래로 돌아와 다시 생한다’라고 하는 역리(易理)에 근거한 것으로 나무 열매 속에 들어있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는 상황으로 비유될 수 있다.

그러기에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동지가 있는 11월, 곧 동짓달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그런데 태양력은 동지 후 8~9일이 있어야 새해가 되며 음력은 보름 정도 있어야 새해가 되니, 그것은 밤낮의 길이만으로 보면 동지가 분기점이지만 계절이라든가 추위, 하늘 기운의 성장 등을 감안하면 동지에서 며칠이라도 지나가야 새해로 계산할 수 있는 모양이다. 동지는 천근(天根)이라고도 한다. 동지는 영어로는 윈터 솔스티스라고 해서, 태양이 가장 남쪽에 가 있다가 다시 북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잠시 정체되는 극점을 의미하는데, 천근이라고 할 때는 더 헤븐리 팔루스라고 해서 하늘의 기운이 남성의 성기가 뻗치는 것처럼 뻗쳐오르는 순간을 뜻한다고 한다.

1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다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지났다. 서양에서 동지절 축제를 대신하는 크리스마스도 지났다. 동서양의 태양 모두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의 운행을 시작했다. 태양이 새로운 운행을 개시하면서 얼어붙어 있는 지표(地表) 아래에 있던 하늘의 기운이 마치 새로 태어나는 생명처럼 부활하고 있다. 굳이 주역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연말은 곧 천지의 마음이 드러나는 때라고 하겠다.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새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진 지난 1년이 이제 새로운 1년으로 넘어가는 때이다. 음양의 순환이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이자 세상의 큰 이치이다. 우주의 시계는 우리에게 이제 잠시 멈춰서서 자신과 주위와 사회와 나라를 돌아보고 시선을 앞으로 돌리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과거에 매달리기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전환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할 때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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