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오위린 지음/이용빈· 강경민· 김민하 옮김/한울/5만5000원 |
중화민국(타이완) 초대 주한대사를 지낸 사오위린(1909∼1984)의 회고록이다. 근대 한국을 둘러싼 국제 환경과 정치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료로 평가된다. 3·1운동에서 임정 항일투쟁, 6·25전쟁, 이승만 정권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이 중국 지식인의 시각으로 쓰인 책이다. 저자는 26세 때 쓰촨대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항일운동에 뛰어들고자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외교부에 들어간 저자는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일제 말기 1944년 김구의 요청으로 임시정부의 중국인 고문이 되었다. 이는 한국 독립 이후 초대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저자가 주한 대사로 부임한 시기는 한국과 타이완이 미국의 극동정책에 의해 함께 버림 받던 때였다. 저자는 한국이 강대국에 의해 희생된 사례로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들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타이완도 미국과 영국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저자가 직접 겪은 김구와 이승만의 성격이나, 6·25전쟁 발발 당시 이승만의 대응방식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발발 직후 이승만정부는 당시 주요 동맹국에 알리지도 않고 대전으로 피난하기도 했다. 저자는 맥아더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김구에게 이승만에 대해 물었다. 김구는 주저없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다 합심 협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사(國事)이며,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획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겸손하고 넓은 마음을 지닌 김구 주석과 집권욕이 강한 이승만 박사는 삼국시대의 유비와 조조에 비교할 만하다”면서 “나는 당시 이미 김구 주석은 장차 최고지도자의 위치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책에는 미·영·소 등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좌지우지된 국제적 상황 등 한국 외교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이 많다.
정승욱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