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예산안의 법정 시한 처리가 불발된 2일 오후 국회 본회의가 정회되자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국회는 3년 연속으로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 신설된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가 시한 내 처리의 원동력이었다. 이 제도는 11월 30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12월 1일부터 정부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게끔 했다. 원내 과반이었던 여당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야당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겠다”고 압박하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여소야대’인 문재인정부에서는 국회선진화법도 소용이 없었다. 정부 원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도 가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정부 원안이 상정됐지만 정세균 국회의장은 “원내 의석 분포와 현재 상황을 감안했다”며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결국 3년간 지켜온 새로운 국회의 전통이 깨지며, 새해 예산안이 언제 처리될지 알 수 없는 선진화법 도입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됐다.
내년 예산안 법정 시한 처리가 불발된 2일 오후 9시 50분께 본회의가 정회되자 이낙연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정세균 국회의장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합의 도출 무산으로 예산안 처리가 불발되자, 다음날 본회의 개의를 위한 `공휴일 본회의 개의에 관한 건`을 가결시키고 있다.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력 부족, 전략 부재는 예산안 표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 새누리당도 ‘소수여당’이었지만 국회는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 여야는 누리과정과 법인세 등 쟁점에서 한발짝씩 물러나며 합의점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민주당은 다른 협상 카드도 준비하지 않은 채 최대 쟁점인 공무원 증원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캐스팅보터인 국민의당도 우군으로 만들지 못했다. 여당이 ‘최종 방어선’으로 강조해 온 법정기한 내 처리가 무산되며 이후 협상에서는 여당의 목소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도 대승적 협조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예산안 발목잡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야당이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야는 3일에도 서로 상대방에게 양보만 요구하며 공방만 계속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새 정부 국정운영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여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여당의 양보를 요구했다.
이도형·이우중 기자 scop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