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소각해 악순환 고리 끊는다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은 29일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원금 1000만원 이하 채무를 10년 이상 상환하지 못한 사람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 연체자 83만명, 민간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금융공공기관 등의 연체자 76만명으로 모두 159만명이다. 이들이 갚지 못한 빚의 원금은 6조2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행복기금 미약정자(빚을 감면받는 대신 나머지 빚을 갚겠다는 약정을 맺지 않은 연체자) 기준으로 평균 약 450만원을 약 14.7년간 연체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나 60세 이상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이자 저신용자이다.

정부는 장기소액연체자 가운데 심사를 통해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상황에 따라 추심을 중단하고 최대 3년 내로 채권을 정리·소각하거나 즉시 채무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재기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내년 2월부터 신청을 받는다. 생계형 재산을 제외한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고 중위소득의 60%(1인 가구 기준 월소득 99만원) 이하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와 별도로 국민행복기금 보유 채권에 한해 장기소액연체자가 아닌 10년 미만 1000만원 초과 채무자 100만명에 대해서도 채무자의 신청을 받아 상환능력 재심사를 거쳐 원금 일부를 감면하고 상환을 유예하기로 했다. 국민행복기금 주채무자의 연대보증인 23만6000명에 대해서는 별도 신청 없이 재산조사 후 즉시 채무를 면제하기로했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 우려와 관련해 이번 조치가 일회적·한시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재산·소득을 숨기고 채무탕감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신고자 포상을 통해 신고를 독려키로 했다. 부정감면자가 발견되면 감면을 무효로 하고 신용정보법상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시켜 최장 12년간 금융거래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보완장치를 마련해 정말 필요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막혀있는 우리 경제의 혈맥을 뚫기 위해 이번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출연금 받아 채권 소각
채무 감면은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국민행복기금의 경우 자체적으로 상환심사를 거쳐 차등적으로 채무를 감면한다. 국민행복기금 외의 연체자와 관련해서는 내년 2월 별도의 한시적 기구를 설립해 채무 감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회·시민단체 기부금과 금융권 출연금 등으로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의 연체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현실적으로 사회·시민단체의 기부금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결국 민간 금융사들의 출연금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기부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은행이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얻는 금액을 기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금융위는 지난 27일 시중카드사 관계자들을 불러 재원 마련을 위한 기부금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치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권은 국민행복기금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기부금과 출연금을 내도록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도덕적 해이에 따른 세금 낭비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순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채권이 부실화된 건 당초 상환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금융회사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백소용·염유섭·임국정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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