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1세대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상현(42) 작가의 말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의 타이틀 글귀를 의뢰받았을 때 그는 실제 도박장에 가서 돈을 잃어보기도 했다고 한다.작품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과 ‘태극기 휘날리며’(2003),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이병주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2003) 등의 타이틀 글귀이다.
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1세대 캘리그래퍼’ 이상현 작가는 “글씨는 마음을 담는 작업”이라며 “한글의 조형미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
이씨가 2007년부터 시작한 ‘붓을 든 서양 신사’란 내용의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는 동서양의 조화와 서예의 대중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행사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장을 잘 차려입고 재즈 음악과 함께 등장해 붓과 먹을 이용해 우리 글을 쓰곤 한다.150회가량 퍼포먼스 이후 얻게 된 ‘붓을 잡은 연기자’란 별명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 중 하나.
이씨는 캘리그래피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강력한 전달력’에서 찾았다. 이씨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현대미술이나 어려운 한문서예와 달리 캘리그래피는 한글을 쓰기 때문에 누구나 직관적으로 작품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캘리그래피란 장르를 개척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한편으론 책임감도 크다.
이씨는 “서양화 대가인 김흥수 화백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예술은 시대의 문화를 만들고 예술가는 그 문화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한다”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붓글씨를 보다 대중화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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