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만 해도 경찰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촛불 정국에서 대처도 매끄러웠다. 수사권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발이 꼬이면서 내부불만이 지금은 끓어넘치기 직전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첫 단추는 외부인사와 학계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잘못 꿰었다는 게 일선 경찰의 시각이다. 예컨대 개혁위는 집회·시위 채증은 ‘과격한 폭력이 임박’한 때로 축소하고, 긴급체포시에는 상급자에게서 사전 허락을 받으라고 권고했다. 경찰 수뇌부는 개혁위의 이런 요구를 전부 받아들였지만, 일선 경찰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우선 연속적인 집회·시위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폭력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경찰이 그걸 사전에 예측하고 촬영을 하냐는 것이다. 또 긴급체포는 말 범죄자의 도주·증거인멸 등이 우려될 때 말 그대로 긴급상황에서 하는 체포인데, 그렇게 사전 허가를 받다보면 범죄자는 이미 달아나고 없을 거라는 게 일선 경찰의 우려다. 이 때문에 일부 경찰들은 인권친화를 명분으로 내건 개혁안을 두고 “범죄자 친화적”이라고 꼬집는다. 한 경찰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차벽, 살수차, 채증 등을 사실상 봉쇄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그 자유에 따른 불이익은 일반 시민들이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종로 부근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자 동료들이 달려가 구하고 있다. |
구은수 前 서울청장. |
그러나 이렇게 경찰에 닦친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묘책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수뇌부와 일선 경찰 사이엔 위기감에 대한 온도차도 어느 정도 있다. 한 경찰은 “나름 촛불정국도 잘 관리하면서 현 정권 탄생에 경찰이 일조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경찰이 적폐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그저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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