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시리즈 ‘미집행 20년, 사형제를 말하다’를 준비하면서 만난 전문가들의 시각은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렸다. 놀라운 건 양측 간에 전혀 접점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존치론자, 폐지론자 모두 저마다의 논리를 앞세워 당위성을 주장할 뿐이었다.
존치 혹은 폐지, 어느 것이 정답일까. 취재할수록 혼란이 커졌지만 분명히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 존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의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사형 집행을 유예하면서 한 번도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국회에서는 사형폐지특별법안이 7번이나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에 방치되다가 폐기를 반복했다. 국제사회의 폐지 압력과 압도적인 존치여론,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존치·폐지론자의 대립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폐지=범죄증가’라고 강조하고 폐지론자들은 ‘존치=야만’이라며 상대방의 주장을 도식화해 자기네들의 주장만 반복하는 형국”이라는 한 형법학자의 분석은 이런 상황의 필연적 결과로 보였다.
이창수 사회부 기자 |
이번에는 찬반 모두의 의견에 관심을 갖고 건강하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취재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한 ‘존치론자’ 교수는 존치 여론이 80%에 이른 세계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여론이 반드시 법률적, 정책적 관점에서 옳은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폐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한 법조인은 “피해자와 유족의 상처를 살피고 보듬을 방안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폐지론은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치론자에게 압도적 존치 여론은 유리한 조건임에도 무조건 반기지 않고, 폐지론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한 끝에 다다른 인식이었다.
이번 공론화 장에서 국민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대승적 견지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등 사형제를 둘러싼 미래지향적인 접근을 해주기를 바란다.
이창수 사회부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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