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직장인 최모(26·여)씨는 직장 상사를 비롯해 거래처 관계자들의 주소를 챙겨 추석선물을 일찌감치 준비했다. 고민 끝에 고른 건 와인. 사는 데만 50만원가량 들었다. “상사에게 반드시 추석선물을 하라”는 부모님의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비록 작은 선물이더라도 분명 기특하게 볼 것이란 게 부모님 생각이었다. 최씨는 “선물을 고르는 것부터 어디까지 보내야 할 지 등 고민할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라며 “사회생활의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은 알지만 스트레스가 컸다”고 토로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명절용 인맥관리’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특히 직장 새내기들 중에선 갑자기 늘어난 인간관계를 버거워하거나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선물 문화에 어색해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명절에 선물을 보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문화를 두고 ‘고마움의 표시’란 시선과 ‘불필요한 허례허식’이란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이중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부모님 용돈(64.1%), 부모님과 지인 등 선물(39.3%)이었고, 정작 귀성 교통비(25.3%)나 차례 상차림 비용(18%), 추석빔(6.7%) 등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날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추석선물’, ‘선물세트’를 검색해보니 3만∼5만원선 선물세트의 구매평이 많았지만, 10만∼30만원선의 비교적 고가의 제품들의 인기도 상당했다.
6년차 직장인 김호중(35)씨는 “5만원짜리 선물을 10명에게만 보낸다고 해도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고 결혼식 축의금처럼 ‘쓴 만큼 언젠가 돌아올 것’이란 생각으로 지출을 늘린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명절선물 준비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그것이 관례처럼 자리잡은 문화이기도 하지만, 내심 ‘고마움을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사의 눈 밖에 나거나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단 우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명절도 직장생활의 연장선상으로 여기는 기성세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상사나 동료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6월 한 취업포털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8명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가장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은 직장 상사(29%)와 원만하지 않은 직장 내 인간관계(20%), 과도한 업무량(19%) 등 순이었다.

대인관계 강의를 하고 있는 정모 강사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기성세대의 문화를 젊은 층에서 무리하게 따라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담감”이라면서도 “명절에나마 서로 간 안부를 묻는 것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직장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면 명절 인사나 선물을 아예 ‘일’처럼 생각해 준비하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비싼 선물보다는 캘리그라피나 직접 쓴 편지, 도서 등 가벼운 선물을 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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