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친 가객 김광석. 그가 죽고나서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두고 온갖 소문도 무성했지만 여태껏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21년 만에 그의 죽음이 정식으로 사회문제화되자 전 국민은 지금 故 김광석을 다시 한번 애도하면서도 그의 탐탁지 않은 사망 원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
고 김광석 |
이상호(전 MBC 기자) 고발뉴스 기자가 자살로 결론난 김광석 죽음을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을 만들어 타살 의혹을 주장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월호 침몰 후 ‘다이빙 벨’을 제작하며 영화감독으로 나선 이 기자의 두 번째 작품이 ‘김광석’이다.
그는 김광석의 사망 전후에 벌어졌던 일들을 소재로 삼아 영화를 제작했다. 김광석이 가수로 활동한 시기부터 죽는 날까지, 그리고 사건 현장은 물론 그의 주변인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내용의 핵심은 김광석 사망 당시 타살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한 점이다. 김광석의 주검 현장에 여러 의문점이 있다면서 끈질긴 추적을 통해 김광석의 딸 서연양마저 10년 전에 숨진 새로운 사실을 캐냈다.
이 기자는 곧바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검찰청으로 달려가 서연양 사망사건을 재수사해달라고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후 사건은 김광석 부인 서해순씨 쪽으로 불리하게 돌아갔고 전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잠적설’까지 나오자 급기야 서해순씨는 자발적으로 TV뉴스에 출연했다. 앵커와의 인터뷰에서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김광석 사망 의혹만 더 부풀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광석 타살 의혹을 정식 제기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이 기자와 자살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는 서해순씨를 두고 항간에서는 “센 사람끼리 제대로 붙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두 사람 중 누구 말이 진실인지 재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을까. 어쨌든 김광석의 죽음은 비극이었고 그 미스터리는 영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김광석은 누구인가= 명지대 재학 중인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데뷔했으며 1988년에는 그룹 ‘동물원’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그 후 ‘서른 즈음에’와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일어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냈다.
서정적이면서도 ‘실화’를 소재로 노래를 만들어 듣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음유 가수다. 그의 목소리는 자체가 캐릭터였다. 흡인력 있는 목소리는 사계절로 치면 가을동화 같은 느낌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어도 김광석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은 국내 유일의 가수다. ‘난 알아요’가 판을 칠때 김광석은 독보적인 팬클럽을 형성하며 대학로 라이브 현장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다.
주로 ‘학전’소극장에서 3개월씩 하루 2회 연중무휴로 라이브공연을 펼쳤고 화장실 복도까지 꽉 찰 정도로 공연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어느 정도 수입도 보장돼 4층짜리 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1993년에 자신의 앨범 4장에 대한 모든 권리를 아버지에게 넘길 정도로 부모를 끔찍이 여겼던 효자였다.
공연 수입만으로도 가정을 꾸려나갔다. 성격은 약간 내성적이긴 하나 쾌활하면서도 부드러웠고 평소 술을 좋아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그런 그가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30분쯤 자신의 집에서 갑작스럽게 숨졌다. 사망원인은 자살이었다.
![]() |
고 김광석 부인 서해순씨가 지난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방송캡처 |
언뜻 방송에 나온 전깃줄 매듭을 보면 일반 사람들이 돌돌 말아 묶는 매듭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매듭 형식 같았다. 또 거실 바닥에는 마시다 남긴 맥주 한 병과 술잔, 그리고 재떨이와 담배 두 갑이 있었다.
부인 서해순씨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방에 들어가 잤다고 말했다. 그리고 중간에 잠이 깨 밖에 나와보니 남편은 계단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아 들어가서 자라고 했더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응급조치도 하고 밑에 층에 자고 있는 오빠를 깨웠고 그러다 보니 119신고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김광석은 계단에 앉아 있을 당시 살아있었던 것인지, 119구급차 후송 도중 숨진 것인지, 병원에서 사망한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메모광이었던 김광석은 유서도 남기지 않는 등 여러 의문점이 있었는데도 당시 경찰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단정지었다.
◆김광석 부부관계는 어땠을까= 부부간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김광석과 부인 서해순씨의 부부관계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사자들만 아는 사이지만, 밖으로 비친 이들의 부부관계는 곱지 않았다. 먼저, 김광석은 사망 한 달 전에 부인과 동반해 미국 뉴욕공연을 갔다.
![]() |
이상호(가운데) 기자 가 지난 21일 검찰청사 앞에서 고 김광석 딸 사망과 관련해 재수사 고발장을 내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
이들 부부의 또 하나 갈등 요인은 음반판매 수익 문제다. 김광석은 한창 인기 있을 무렵인 1993년 아버지에게 자신의 음반 4장에 대한 판권 전체를 양도했다.
자신은 4층짜리 집도 있고 부모님 쓰시라고 자식 된 입장에서 드린 것이다. 음악에 관한 모든 권리를 아버지에게 주었을 때 그는 아내 서해순씨와 상의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문제가 나중에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김광석 노래 저작권 분쟁= 김광석 사망 후 부인 서해순씨 음악으로 발생하는 저작권료 등 모든 수익이 시아버지에게 돌아가자 3개월여 지난 그해 4월 17일 음반 저작권이 배우자인 자신에게 있다며 시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두 달 후쯤 라이브 음반에 한해 권리를 넘기고 죽은 후에는 손녀에게 모든 걸 양도하겠다고 며느리 서씨와 합의했다.
직후 김광석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모든 권리를 아내와 아들에게 넘긴다”는 서씨와 합의한 내용과 다른 유언장을 동시 작성해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에 시아버지가 며느리 서씨에게 “‘거리에서’ 등 21곡을 나한테 동의없이 사용해 추모앨범을 만들어 판 것은 불법”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이 진행되던 중 김광석 아버지는 이듬해 10월 8일 돌아가셨고 소송은 당사자 사망으로 종료됐다.
이후 김광석 음악에 관한 모든 권리는 합의 내용대로 서씨와 함께 사는 딸 서연양에게 돌아갔다. 이에 2005년 4월 김광석 어머니 등 유족들은 “당시 합의는 며느리의 강압에 의한 것이다. 모든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며 서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서씨와 시아버지 사이에 체결한 약정이 시아버지 단독 유언에 우선한다”판결에 따라 승소했다. 이 소송은 2008년 6월까지 진행됐으며 모든 권리가 있던 서연양이 17세 나이로 2007년 12월 13일 숨졌고 대법원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모든 권리는 서연양에게 있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 |
김광석과 딸 서연양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생전 모습. |
서씨는 언론을 통해 딸 서연양의 사망 사실을 10년 동안 알리지 않은 데 대해 “경황이 없었다”고만 말할 뿐 여러 가지 속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씨는 “나를 살인범으로 몰고 있는 이상호 기자는 20년 동안 내 주변에서 나를 괴롭혀 왔다. 영화 홍보를 위해 나를 살인범으로 모는 마녀사냥을 더이상 하지 말라. 여자 혼자라고 그러지 말고 당당하게 내 앞에 나와 얘기하라”며 적극 맞서고 있다.
현재 서연양 사망사건을 재수사 중인 경찰이 비극적인 김광석 죽음까지 진실을 밝혀낼지 기대해본다.
추영준 선임기자 yjcho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