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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 4호선 지하철의 승강장 모습. |
지난달 31일 지하철 4호선에 들어선 김모(31)씨는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모습에 놀랐다. 평소엔 5분에 한 대꼴로 도착하지만 이날은 지하철의 이동 현황을 보여주는 전광판에서 그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안내방송에서 “안산지역 4호선 사고로 지하철이 연착되고 있다”고 흘러나왔다.
김씨는 며칠 전에도 인근 역에서 투신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떠올리며 계속되는 사고소식에 불안해했다.
최근 스크린 도어가 없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투신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24일 기준 올해 수도권 지하철에서 일어난 투신사고만 13건에 달한다. 이들 사고는 스크린 도어가 없는 역에서 일어났다는 점뿐만 아니라 비슷한 기간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도 공통분모로 꼽힌다.
지난 1~5월 경기 의정부 일대 경원선 지하철에서 한달에 한번 꼴로 투신사고가 일어났고, 6~8월까진 경부·경인선 일대에서 총 4건, 8~9월은 4호선 안산선에서만 무려 5차례의 투신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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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왜 비슷한 기간, 같은 장소에서 투신이 일어날까?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사고소식을 접하면 다시 자살을 떠올리게 되고, 앞서 언급된 사고 장소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미디어에서 자살이 소재로 다뤄지더라도 안정적인 이는 영향을 안 받지만 우울증 경험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원인과 결과는 명확하진 않지만 타인의 자살 소식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해 같은 방법으로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하철이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임을 상기시켰다.
박 교수는 “지하철은 접근가능성이 좋아 자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사고 소식을 접하고 찾아오기 쉽다”며 “자살 징후가 있는 환자라면 주변을 기웃거린다든가 하는 징후가 있어 CC(폐쇄회로)TV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자살을 막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지상파의 한 드라마에서 학생이 지하철에서 관련 장면이 자세하게 그려지는 등 지하철이 자살을 시도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도 원인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지하철역 자살 장면이 빈번히 다뤄져 실제로 투신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두달 후 광역 전철역 스크린 도어 설치 완료···남은 기간 투신예방대책 필요해
서울의 지하철 역사 280여개에는 지난 2009년 스크린 도어가 전면 설치된 상태다. 이전까지 연간 40건가량 일어났던 지하철 투신이 2010년 0건으로 확 줄었다. 2011년 2건, 2012년 1건이 각각 일어났으나 그 이후엔 보고된 바 없다.
이에 반해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수도권 광역 역사 내에서는 자살이 증가함에 따라 풍선효과(한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부분에서 그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가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은 내년 초까지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일부 광역전철 10개 노선에 전면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2월 완공되는 서울 도봉구 소재 녹천역을 마지막으로 24일 기준 광역전철 83개역의 스크린 도어가 설치를 마친다. 녹천역과 서울 노원구 소재 월계역을 뺀 나머지 81개역은 오는 11월30일 전까지 완료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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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 4호선의 지하철 몇몇 역에는 현재 스크린 도어 설치가 진행 중이다. |
대략 2달간 시간이 남았지만 최근 스크린 도어가 없는 역에서 자살이 증가함에 따라 별도의 대책이 필요한 형편이다. 특히 지난 8~ 9월 투신사고 집중됐던 안산 일대가 요주의 대상으로 꼽힌다.
안산 4호선 중앙역은 11월24일, 초지역은 11월25일, 고잔역은 11월 27일 각각 스크린 도어 설치가 완료된다.
최근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현장은 여전히 투신에 무방비 상태였다.
일부 역엔 스크린 도어 공사가 진행 중이라 시공업체에서 고용한 안전관리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역은 그조차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스크린 도어가 설치 중인 한 역에는 안전관리원들이 있었지만 몇주 전 투신 사고를 막지 못했다.
한 역사의 청소 담당자는 “청소를 하고 있을 때면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확 뛰어내릴까’라고 말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며 “갑자기 사람이 뛰어드는데 어떻게 막겠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최근 갑자기 안산 지역에서 자살이 많아졌는데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안산시 관계자는 “연휴 후 안산 4호선 반월역부터 신길온척역까지 역마다 4명씩 교대로 역을 지키는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요원은 오는 11월 30일 스크린 도어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 지하철 투신을 비롯한 안전관리사고를 막기 위한 순찰을 담당한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지난달 29일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역사 내에서 자살예방 영상을 상영하고 자살 유해정보를 함께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자살예방 영상은 내달부터 코레일 역사 내 ‘괜찮니’ 캠페인( www.howau.co.kr)의 홍보와 함께 이뤄지고 자살예방 핫라인(1577-0199)과 '희망의 전화'(129)에 대해서도 안내할 예정이다.
글·사진=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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