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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남성·엘리트주의에 헤어나오지 못한 ‘우물 안’ 외교부

입력 : 2017-09-19 19:07:45 수정 : 2017-09-19 22: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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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성차별 인식' 실태와 대책/2016년부터 해외공관서 성폭행 등 발생/고위관리 ‘여자열등’ 발언 등 아슬아슬/학벌·연고주의 등 전근대적 틀도 여전/40∼50대 男관리자, 20∼30대 女직원/성별·세대별 구분… 구조적 원인도 한 몫/성차별 문제 민감 신세대 직원 대거 유입/처벌 강화해도 근절 안돼… 대책 겉돌아/차별방지 학습 등 주기적 재교육 필요
# 50대 외교부 본부 간부 A: 30대 여성 기자에게 농담조로 “좋은 술이 있는데 같이 먹게 친구 좀 소개해줘.”

# 아시아 지역 주재 B 대사: 여성 직원과 동석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요즘은 예전과 달리 여자 직원도 일을 곧잘 해.” 여성 직원이 미간을 찌푸리자 “왜? 기분 나쁜 거 아니지?”

# 외교부 본부 간부 C: “참, 여성인데도…, 여성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 사람) 참 아주 뭐랄까 된 사람이더라.”

21세기 대한민국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외교부 고위관계자들의 아슬아슬한 발언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조센진(원래 조선인이라는 뜻이나 뉘앙스에 따라 한반도 출신에 대한 민족차별 언어)이 일을 곧잘 해’라거나, ‘참, 조센진인데도…, 조센진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참 아주 뭐랄까 된 사람이더라’라고 단어만 바꿔보면 금세 알 수 있듯이 특정 민족, 성별, 지역, 학교 등에 대해 우열(優劣)을 논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파장을 일으킨 외교부 국장의 ‘여자 열등(劣等)’ 발언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말 실수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부 외교관들의 양성평등 의식 부재와 왜곡된 성 관념은 성(性)비위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일부 직원의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19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가 흐린 하늘 아래 우뚝 서있다.
이제원 기자
외교부는 최근 성비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제적 이미지가 구겨졌다. 지난해 남미의 칠레 주재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파문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 7월에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주재 외교관이 부하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해당 공관장도 성추문 사건에 휘말려 충격을 줬다.

외교부는 칠레 주재 외교관 사건을 계기로 지난 1월 성비위 사건 방지 및 복무기강 확립 대책을 세웠다. △감사 강화 차원에서 감찰담당관실 신설 및 감사 시 성비위 점검 필수항목으로 추가 △공관 내 성비위 시 공관장에 대한 엄중문책 △공관장 재직 중 성비위 징계 받을 경우 공관장 재보임을 금지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 △성비위 사건 신고절차 간소화 및 감사관 핫라인 개설 △성비위 예방교육 시 일률적인 교육이 아닌 직급별 교육 실시 등이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처벌 수위를 높이고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도 외교부가 이미 수차례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성희롱 예방교육과 징계 수위를 정부 표준안보다 강화된 내용을 시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후 양성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양성평등 관점이 외교부의 인사와 업무 방식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일부 외교관의 잘못된 발언이 표출되는 것에 대해 성비위 예방교육 등이 겉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외교부 직원은 19일 “문재인정부가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장관도 여성이라는 점에서 간부들이 이전보다 조심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분위기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긴장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6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5차 세계한인법률가회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다른 직원은 “동료와 편안한 대화 중 방금 한 자신의 발언이 여성혐오 발언인지 아닌지 물어오는 남성 동료도 있다”며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사람 따로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재외공관의 성비위가 집중조명을 받았지만, 본부에서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며 “과거엔 피해볼 게 뻔해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참지 말고 신고해 바꾸자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외교부는 전반적으로 학벌에 의한 엘리트주의, 남성주의, 미국라인·일본라인 등 부내 연고주의 등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부 직원은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한 채 “야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오지(奧地)에 안 가려고 한다”는 등 여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파장과 관련해 “요즘 외교부 혁신논의 중 일·가정 양립 문제가 자주 주제로 오르는데 ‘육아로 여성이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해서 충격”이라고 말했다.

외교부의 이런 상황은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외교부는 타 부처에 비해 관리자급의 남성 비율이 가장 높고 신입 입부(入部) 비율은 여성이 가장 높은 부처다.

외교부에 따르면 실무자(약 1300명)의 남녀 비율은 5대 5. 그런데 본부와 재외공관의 과·팀장 이상 관리자급(약 600명) 중 남녀 비율은 9대 1이다. 신입 부원 비율은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고 있다. 현재 외교부의 전반적인 구조가 40∼50대 남성 관리자와 20∼30대 여성 직원으로 이뤄져 성별, 세대별 구분이 확실하다. 직급별, 성별 권력관계에 세대차까지 얽혀있어 같은 언행이나 사건을 두고 인식차가 나고, 이는 성차별·성폭력 문제에도 적용된다. 양성평등 문제에 둔감한 남성 관리자와 성차별 문제에 민감한 신세대 직원 사이의 성폭력 문제에 대한 감수성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수년간 해외 생활을 하다 귀국한 간부들의 경우 양성 평등 인식에 대한 한국 사회의 빠른 진보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한 직원은 “우리나라가 워낙 역동적으로 바뀌다 보니 4∼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면 사회가 정말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생각이 굳어 있는 고위간부일수록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민간 영역의 성차별을 피해 공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면서 전 부처에서 기존 50대 남성 위주 고위직 공무원이 상당한 피해의식을 갖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고위공무원은 주로 부하직원으로 여성을 다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성평등, 차별방지, 간접차별에 대한 학습과 감수성 훈련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재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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