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근대화라 하면 서구의 산업혁명을 떠올린다. ‘근대화=산업화’라는 등식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지 시대 서구의 선진문명을 정점에 두고, 다른 문명을 열등한 것으로 타자화한 결과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근대화는 자연적 수용이 아닌, 정치적 선택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는 구시대적 산물로 치부됐다. 특히 조선을 지탱한 유교는 민주주의와 상충하는 이념으로 통했다.
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신간 ‘대동민주 유학과 21세기 실학’에서 이 같은 통념을 거부한다. 그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유교라는 뿌리가 있었기에 꽃피울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대동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등을 내세우며 가부장적 사상에 기반을 둔 유교는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설자리를 잃어가는 듯 보인다. 이에 나 교수는 “유교에 가부장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보듯이 가부장주의는 동서를 떠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서구의 사회계약론이 평등한 개인 간의 대칭 관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비대칭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학적 사상이 없는 서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은 비대칭 관계가 사회 밑바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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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한국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참여의식과 일반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과 공유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1980년 광주. 5·18기념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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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석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한국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참여의식과 일반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과 공유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1980년 광주. 5·18기념재단 제공 |
나 교수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는 유교적 밑바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조선시대 학자들은 유교의 원칙을 지키고 유교적 이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다”며 “분단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저항운동도 이런 바람직한 지식인상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어 “한국 민주화 운동은 지식인의 실천적 참여의식과 이를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인정하는 일반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과 공유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나 교수는 오늘날 국가주의적 충효를 요구하는 유학은 일제의 잔재라고 비판한다. 그는 “일제는 강제적인 식민 교육을 통해 황도유학 정신을 한국인들에게 강요하여 일제 천황에게 충성하는 노예로 만들었다”며 “그 과정에서 유학정신은 부국강병의 일국적인 국가주의 논리로 변형, 축소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나 교수는 전통을 거부하는 서구 중심적 사고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자신이 속한 문화와 제도를 치열하게 비판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해서 전통을 통째로 거부하고 자신을 폭력적으로 유린한 외세와 그 문명을 선진 문명으로 간주해 환호하는 것이 전통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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