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군이 ‘그동안 우리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정의의 군대로 갈 수 있는데, 달랑 순직처리한다는 발표만 했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게 정의의 군대, 국민의 군대”라고 했다. 아버지의 전쟁은 절반의 승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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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이 1일 세계일보와 만나 아들 고 김훈 중위에 대한 국방부의 순직 인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애(김 중위)를 국립묘지에 보내놓고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은 있다. 하지만 착잡하고 무겁고 허탈하다. 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 식으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된다. 이러면 안 된다.”
―무슨 말인가.
“먼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정의의 군대로 가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런 뒤 늦게나마 순직처리를 했다고 해야 순서가 맞다. 그런데 앞부분 (사죄 및 재발 방지 약속) 없이 달랑 순직처리한다고만 발표했다. 나는 그것(순직)을 위해 싸운 게 아니다. 진실을 규명하고 사죄받아야 김 중위 명예가 회복된다.”
―군이 공식 사죄하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그렇다. 군은 한 달 전까지도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문재인)정부가 (군 의문사 진실규명에) 강력한 의지가 있으니, 군은 무슨 떼쓰는 애에게 떡 하나 던져주는 것처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군 태도가) 또 바뀌어 사람이 죽으면 개인에게 뒤집어씌우고 접근도 못 하게 할 수 있다.”
―그동안 느낀 문제점은.
“군에는 ‘죽은 놈은 불쌍하지만 죽은 놈이고, 산 놈은 살아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 또 합리적 명령에만 복종하는 선진국 군대와 달리 우리는 절대적 상명하복이다. 진급이나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지휘관 명령에 불복하기도 어렵다. 이런 문화를,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3성 장군인 나에게도 이렇게 했는데 다른 부모들에겐 …. 싸워 보지도 못한 사람은 (억울해서) 죽는다. 나는 싸웠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건 김 중위 한 명의 일이 아니다. 현재는 부도덕한 시스템이고, 자살조작 시스템이다.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군 의문사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 군 사건 수사에 민간전문가 등 제3기관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화를 해야 한다. 시스템으로 해놔야 정권이 바뀌어도 투명하게, 양심적으로 할 수 있다.”
―과거 정권에서 발생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나 송영무 현 국방부 장관의 사과나 유감 표명을 수용할 의향은 있는가.
“물론이다. (아들을 잃은) 내 마음은 아프지만 나도 국가와 군의 발전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군인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내가 죽었을 때 몇 년이 걸려도 해결해준다는 신념이 있어야 총을 들고 적진에 진격할 수 있다. 새로운 지휘부가 사과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정의로운 군대로 새 출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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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했던 아들 김척 예비역 육군중장(왼쪽)이 제1군단장 시절이던 1996년 2월 육사 제52기 졸업식에 참석해 아들 고 김훈 중위의 졸업과 소위 임관을 축하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

김훈 육군 중위 사건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꼽힌다.
1998년 2월 24일 낮 12시 무렵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경계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김 중위(사건 당시 25·육사 52기)가 JSA가 관할하는 241 GP(소초) 3번 지하벙커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당국은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최초 현장감식 2시간 전에 이미 사망원인을 자살로 보고하고, 미군이 현장을 훼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 수사당국의 초동수사 부실 논란과 함께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 파손과 ‘크레모아’(클레이모어·Claymore: 경계나 매복 시 적의 접근이 예상되는 지역에 설치하는 대인지뢰)의 스위치 박스 훼손 등은 몸싸움을 의심케 하는 타살 단서였다.
사건 직후인 1998년에만 세 차례 수사가 이뤄졌지만 자살이라는 군 당국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자살도 타살도 아니라는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유족의 민원 제기에 따라 국민권익위는 2012년 8월에는 화약흔 실험 결과와 함께 벙커 내 격투 흔적이 있고, 김 중위의 관자놀이에서 총구에 눌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자살로 결론 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이런 증거를 토대로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군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를 멋대로 왕래하며 북한군 병사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는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국방부가 고 김훈 중위의 순직 인정을 계기로 군내 의문사 진상 규명과 근원적 문제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
국방부는 1일 군 의문사의 신속 처리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국방차관 직속으로 군의문사 조사·제도 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내년 8월 31일까지 1년간 테스크포스(TF) 형태로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현재 군의 사망사고 조사 발표에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한 의문사는 58건으로 알려졌다.
이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월 국방컨벤션센터에서 군 의문사 유가족을 만나 간담회를 하고 진상규명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한 데 이어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군 의문사를 적폐로 규정하고 강한 해결 의지를 피력한 뒤 나온 후속 조치다.
추진단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단장으로 영현관리·심사·제도, 조사, 법무심사 3개 팀으로 구성됐다. 영현관리·심사·제도팀은 군 사망사고 중앙전공사상 심사와 심사제도 개선, 유가족 상담 등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 연구를 맡는다. 조사팀은 민원이 제기된 군 관련 사망사고에 대한 확인과 조사를 담당하고, 법무심사팀은 군검찰에 진정이 제기된 군 사망사고를 조사한다.
국방부는 “추진단은 군 의문사와 관련한 조사와 순직심사 기능을 같은 조직 내에 맡겨 그동안 누적된 군 의문사 문제를 신속하고 통일적으로 해결한다는 목표에 따라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박수찬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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