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예상보다 조용하다. 북한이 붕괴되면 타격이 만만치 않을 베이징에서도 그다지 거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은 내부에서 ‘안보불감증’이 제기되고 있으며, 중국을 향해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워싱턴에서 거론된다.
한국과 중국 당국이 이런 비판을 모를까. 양국의 처신은 어쩌면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판단에 따른 선택일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실제보다 과장된 반응은 손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불안감을 대남, 대미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강경 발언을 쏟아낸다면 미국으로서도 나쁘지 않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익명을 요구한 한·미 양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발언에 대해 서울 당국의 이해 속에 나온 ‘블러핑’(허세)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에 대한 압박이면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중국을 겨냥했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북한과 미국이 벌이는 ‘말의 전쟁’ 극장의 핵심 관객은 베이징에 있다”고 해석했다. WSJ는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대화와 담판으로 핵문제를 풀자고 설득한 점에 주목했다. 미·중 정상 간 통화는 핵심 관객(시진핑 주석)이 핵심 주연(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와 역할 찾기에 나선 셈으로 볼 수 있다.
다시 4월을 복귀해보자. 워싱턴에서 ‘선제타격’ 등의 발언이 쏟아지던 당시의 위기 상황은 한국의 조기대선 이후 종료됐다. 8월엔 ‘예방전쟁’ 등의 개념까지 소개됐지만 트럼프 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미 국무부의 조지프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수개월간 ‘뉴욕 채널’을 가동하며 물밑 대화를 유지한 사실도 드러났다. 한참 강경 발언을 일삼던 북한도 좀 지켜보겠다며 발을 뒤로 물렸다.
우리 스스로 전쟁 위기설을 부채질할 필요가 없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체제를 강조한 정부의 대응은 옳다. 한반도 정세에서 역할 공간은 좁지만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숙명인 문재인정부에 간곡히 부탁한다. 내부적으로는 치열하되 외부적으로는 진중하게 움직여 달라고.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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