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위의 외증조부 이기일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40년 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해림현에서 숨졌다. 이후 이 경위의 가족은 헤이룽장성 영안시에 정착했으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경위는 톈진 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외할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겠다고 결심한 이 경위는 대학 졸업 뒤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왔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국인으로 느끼는 소외감과 설움을 항상 느껴야 했다.
어느 날에는 외할아버지가 중국인들과 싸워 부상을 입었으나 병원에는 당시 중국 사람들만 치료를 해줬다. 이같은 서러움에 외할아버지는 기회만 되면 손자를 보고 한국으로 가 조국을 위해 일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7년 무작정 제주도로 건너왔으나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방인처럼 대하는 사람들도 있어 한때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목수와 농사, 일용직 노동 등을 전전하면서 견뎌냈다.
이같은 녹록치 않은 생활 속에서도 2009년 귀화에 성공한 그는 본격적으로 경찰채용 시험에 도전했다. 경찰이 되면 내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주경야독으로 출퇴근길이나 화장실에 갈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않았다.
그 결과 2011년 외국어 특채로 순경에 합격해 제주자치경찰단 경찰기마대에서 2014년까지 근무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 더 다양한 역할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2013년부터 간부후보생 시험 준비를 했다. 그 결과 2016년 시험에 합격, 간부후보생 65기로 새내기 경찰 간부가 됐으며, 지난 7월 해경으로 전출해 부산에 있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로 발령받았다.
그는 “중국어선 단속 등 외국어를 활용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물론 지금은 중국에 혐한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서고 공감을 끌어내면 냉랭한 양국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창원=안원준 기자 am33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