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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10'이 뭐길래…네이마르가 PSG로 옮긴 진짜 이유, 펠레의 10번 때문

입력 : 2017-08-04 11:06:05 수정 : 2017-08-05 0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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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대표팀의 간판 스타 네이마르를 스카우트한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PSG)은 4일(현지시간) 영입 발표와 함께 재빨리 홈페이지에 10번을 단 네이마르의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사진)을 올렸다. 팀에서도 10번을 달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PSG 홈페이지 캡처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간판 스타 네이마르(25)가 '꿈의 팀'으로 불렸던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소속 FC 바르셀로나를 떠나 한단계 아래로 평가받았던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PSG)로 옮긴 이유 중 하나가 밝혀졌다.

바로 등번호 10번 때문이다.

4일 PSG가 "네이마르와 5년 계약을 맺었다"며 공식 발표하자 네이마르는 PSG 측에 "10번을 달라"고 요구했다.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PSG)이 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린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간판 스타 네이마르의 모습. PSG는 네이마르의 입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등 마케팅에 나섰다. 사진=PSG 트위터 캡처

◆6000억원을 들여 네이마르 잡은 PSG, 네이마르 "더 큰 도전을 위해"

PSG는 뱌르샤에 바이아웃(원소속 구단이 정한 이적료)으로 2억2200만유로(약 2970억원)을 지급했다.

이는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탈리아 유벤투스로부터 폴 포그바를 영입할 때 지불했던 이전 최고 이적료 8900만파운드(약 1320억원)보다 무려 2.5배나 많다.

또 네이마르에게는 연봉 4500만유로(602억원)를 내밀었다.

5년 계약임을 감안하면 최소 6000억원 이상을 네이마르에게 쏟아부은 꼴이다.

네이마르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왔다"고 이적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은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을 대표하는 동시에 바르샤와 재계약한 리오넬 메시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고 진정한 '넘버 1'이 되겠다는 의지와 PSG를 유럽 정상팀으로 올려 놓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10번은 최고 스타의 징표

네이마르는 2013년 브라질에서 바르셀로나로 왔을 때도 10번을 원했다. 그러나 메시가 꿰차고 있었기에 11번에 만족해야 했다.

축구선수에게 10번은 최고 공격수의 상징이다.

초창기 축구선수들은 각자 포지션에 따라 1~11번을 달았다.. 10번은 가운데 공격수, 즉 센터포워드를 뜻했다.

이 10번은 '영원한 축구황제' 펠레에 의해 '최고선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네이마르도 우상인 펠레의 10번을 달고 싶었지만 2인자였기에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PSG 이적으로 꿈을 이루게 됐다.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듣는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펠레(왼쪽 세번째)가 유연한 드리블링을 선보이고 있다. 춤을 추는 듯 전진하는 그를 보면서 팬들은 아름다움을 느꼈다.

◆펠레, 10번을 '최고선수 상징'으로 만들다

▲17세에 10번을 달고 브라질 대표선수로 나서 월드컵 3회 우승

펠레가 월드컵 무대에서 10번을 달고 뛴 뒤 '10번=에이스'라는 공식이 세워졌고, 10번은 비로소 유의미한 숫자가 됐다.

특히 브라질에선 더 그랬다. 대표팀 최고 선수만이 10번을 달 수 있었고, 펠레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로 꼽혔다.

네이마르는 지난 2014년 6월 인스타그램에10번이 달린 대표팀 유니폼을 소개하며 자랑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펠레는 월드컵 3회 우승과 브라질 프로축구 1부 리그 최연소 득점 1위(16세), 최연소 월드컵 본선 선발(17세), 통산 1281골 등을 기록한 원조 축구황제이다. 

몇몇 전문가가 축구 역사를 '펠레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펠레는 브라질 대표선수로 1958년, 62년 그리고 70년 월드컵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이끌었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상대의 '비겁한' 태클로 인한 부상만 아니었다면 4회 연속 월드컵 우승 주역이라는 기록까지 남겼을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17세의 펠레는 58년 월드컵 당시 웨일즈와 8강전에서 결승골, 프랑스와 4강전에서 해트트릭, 스웨덴과 결승전에서 2골 등 6골을 터뜨렸다.

펠레가 8강전에서 터뜨린 득점은 역사상 월드컵 본선 최연소(17세 239일) 기록이다. 프랑스전에서도 최연소(17세 244일)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브라질 의회가 '국보'로 지정

펠레가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자 브라질 의회는 1962년 그를 '국보'(國寶)로 선언하고, 해외 진출을 금지시켰다. 이에 펠레는 현역 시절 큰돈을 만지지 못했다.

70년 나이지리아와 분리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가 전쟁을 벌였을 때 라고스에서 열린 펠레의 시범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 양측이 48시간의 휴전에 합의한 적도 있다.

이란 국왕은 펠레를 만나려고 공항에서 기꺼이 3시간을 기다렸고, 중국의 국경 수비대가 그와 인사를 하기 위해 초소를 버리고 홍콩으로 들어간 일도 있었다. 

165cm의 작은 키지만 탄탄한 체구로 몸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디에고 마라도나(오른쪽)도 10번을 단 슈퍼스타였다.

◆마라도나, 펠레와 늘 대비되는 아르헨티나 영웅

60~70년대가 분명 '펠레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축구계를 주름 잡았다. 

마라도나는 16세이던 77년 2월27일 헝가리와 A매치 때 국가대표 데뷔전을 가졌다. 펠레가 17세의 나이로 월드컵에 나섰던 때처럼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마라도나는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국가대표로 91경기에 나와 34골을 터뜨렸다.

프로리그에서 491경기 출전, 259득점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리오넬 메시가 2015년 9월17일 AS 로마전에 나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00경기 출전기록을 세운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메시 페이스북 캡처
 
◆현존 최고스타 메시, 밀집대형 파괴는 마라도나·골은 펠레급

리오넬 메시(1987년 6월24일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존 최고의 축구 스타이다.

메시는 '왜소하다'고 불릴 만큼 작은 체구(키 169cm)이지만 6척 장신들이 즐비한 상대 수비진을 농락한다.

이런 메시를 두고 몇몇 전문가는 수비진을 흩어놓는 것은 마라도나를, 득점 감각은 펠레를 각각 닮았다고 한다.

축구황제와 '축구의 신'을 합쳤다니 대단할 수밖에 없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메시는 펠레와 마라도나와 달리 조국의 팬들에게 월드컵 우승컵을 선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화룡점정을 그린 뒤 붓을 거두지 못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꼴이다.

메시는 16세 145일째인 2003년 11월16일에 포르투갈의 FC 포르투를 상대로 비공식 1군 데뷔 경기를 가졌다.

이어 17세 114일째인 2004년 10월16일 RCD 에스파뇰을 상대로 라리가 경기에 나섰다.

바르샤 역사상 3번째 어린 1군 멤버이자 당시까지 가장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프리메라리가에 출전한 기록을 세웠다.

메시는 17세 10개월 7일째인 2005년 5월1일 알바세테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 역시 바르샤의 라리가 최연소 득점 기록이었다. 최연소 1군 데뷔와 득점은 2007년 스페인 출신의 보얀 크르키치에 의해 모두 깨졌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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