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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잊혀진 전쟁’ 되새겨 통일 이루는게 내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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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7 21:51:31 수정 : 2017-06-27 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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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 25개국 완주 마친 한나 김 / 美 랭글 전 의원 보좌관 7년 근무 / 퇴임 뒤 세계 돌며 참전용사 만나 / 위험 무릅쓰고 북한 땅도 밟아 / 한국, 민간차원 6·25기념식 없어 / 광화문광장서 직접 행사 개최 / 美서도 10년째 ‘리멤버 727’ 진행 / “참전용사들 전쟁 기억 안고 살아 / 그들 마지막 소원도 한반도 통일"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 재미동포 한나 김(34)씨는 태극기와 초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오후 6시25분에 시작된 한국전 추모 행사가 한 시간여 지난 7시27분, 그는 몰려든 수십명 시민과 함께 촛불을 켰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25개국 한국전쟁 참전국을 돌며 생존 참전용사를 만나고 한국을 찾은 재미동포 한나 김씨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날은 한국전 발발일인 6·25였지만, 김씨는 종전일인 매년 7월27일이면 오후 7시27분에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관 앞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10년째 촛불을 켜고 있다. 한국전쟁을 시민 스스로 기억하고자 시작한 ‘리멤버727’ 행사다. 한국에서 태어나 6살에 미국으로 이민간 김씨는 정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던 2008년 “잊혀져가는 한국전쟁이 안타까워서” 처음 이 행사를 기획했다. 2009년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결의안을 미 의회에 청원해 통과시켰고, 이 일을 계기로 찰스 랭글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약 7년간 일하며 한국 관련 결의안 5개를 통과시켰다.

랭글 전 의원 퇴임과 함께 올해 1월 ‘백수’가 된 김씨는 10년 전 리멤버727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 중 마지막, 전 세계 참전용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운명처럼 떠올렸고 실행에 옮겼다. 지난 23일 서울 한 카페에서 ‘참전국 일주’를 막 마치고 한국을 찾은 김씨를 만났다.

“리멤버727 이후 너무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의회 고위직에도 있었고요. 열정과 꿈만 있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정리했고, 주변 후원도 일부 받았지만 사비를 털었다. 비행기표만 끊은 채 참전국 25개국을 도는 여정이 시작됐다. 참전국 진영은 가리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 심지어 북한도 갔다. 남미 콜롬비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단 1명의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는 나라도 모두 갔다.

1월 러시아의 혹한도, 불편한 잠자리와 도시당 평균 1∼3일 체류하는 빠듯한 일정의 피로도 모두 견디게 한 것은 전 세계에서 만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환대였다. 할아버지들은 김씨를 손녀처럼 반겼다. “홈 리스에 잡 리스(무직)인 상황이었는데도, 전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3월에 호주를 갔는데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1월부터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방문했던 캐나다 참전용사들이 전 세계 영연방 동료들에게 김씨 여정을 알렸던 것이다. 우연히 찾아간 보훈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해 그를 만나러 올 수 없었던 한 참전용사를 만났을 땐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서로 반가워했다. 김씨는 참전용사 집에서 묵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며 손녀 노릇을 톡톡히 했다. 6살에 이민을 떠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이별한 그는 “할아버지가 전 세계 할아버지들을 대신 내게 보내 주신 것”이라고 했다.

지난 3월 호주에서 만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한나 김.
한나 김 제공
김씨가 만난 참전용사들에게 한국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김씨가 보여준 한 참전용사 자택 거실 사진에는 태극기, 훈장, 한국 관련 기념품이 빼곡했다. 70년 전 전쟁 사진을 품고 사는 이도 있다. “할아버지들은 한시도 한국을 잊지 않고 계세요. 어떤 분들은 늘어서 있는 시체가, 어떤 분들은 고아들이 울고 있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하고요, 근데 우리는 완전히 잊고 살죠.” 김씨는 한반도 통일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참전용사들이 통일을 보지 못하고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국적인 그는 마지막 여정으로 주변 만류에도 북경을 거쳐 5월 말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최근 오토 웜비어 사건까지 터지자 주변에선 그에게 ‘위험한 일’을 했다며 질책하기도 했다.

“저도 너무 두려웠어요. 하지만 전 세계 참전국을 가면서 북한을 안 가면 이 숙제가 완성되지 않는 거예요. 저의 궁극적 목표는 그분(북한)들도 원하는 평화통일이니까.” 김씨는 나, 내 가족과 너무 닮은 북한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적과 싸운 게 아니다”라는 강한 확신을 느꼈다. “물론 감시도 받았고, 그들이 제게 보여준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제가 본 게 전부 거짓이 아닌 것도 알아요.” 북한에선 참전용사를 만나지 못한 대신 전쟁기념관과 판문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다가 팔찌의 십자가 장식을 잃어버렸는데, “자유롭게 오가고 싶은 내 기도와 마음을 북한 땅에 절실하게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년 전 세운 목표를 모두 이뤘으니 이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한국전을 기억하도록 하는 일은 나의 사명이기 때문에 끝난다고 끝나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건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제 삶 자체예요. 10년 전 목표는 세웠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어요. 그저 이 일이 내 삶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따라온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제나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와줬어요.”

그는 11년 전 생사를 가를 뻔한 교통사고에서 살아난 적이 있다. 그 기억은 그에게 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법을 가르쳤고, 이는 그 후 10년간 이 일을 시작하고 이끌어오는 데 도움을 줬다. 정부공식행사 외에 시민이 주도하는 6·25 기념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출국 1주일을 앞두고 단 열 명만 와도 좋다는 마음으로 기념행사를 기획한 것도 그런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스물넷에서 서른넷까지, 청춘을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일에 쏟은 김씨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잊혀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전쟁. 가장 큰 아픔이자 숙제. 저의 인생을 건 사명(life-long mission).”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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