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인이라는 사어가 있다. 웃음을 주조해 세상만사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롭게 다루는 것이 희극의 사전적 의미다. 희극인은 그 극을 짓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희극배우다. 보통의 연기자들은 정극배우라 불렸다. 개그맨은 웃음을 유발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에이 그냥 다 웃기는 사람들이잖아요"라고 따져 묻겠다. 차이는 웃음만을 만들어내는 것과 어떠한 목적을 위해 웃음을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옛날 맹구 콧물 먹던 시절의 콩트는 교훈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극의 발단에서 갈등이 발발하고 전개와 절정으로 이어지며 곳곳에 숨겨논 웃음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다.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행해지거나 난센스로 반전적 재미를 주는 방법이 주로 활용됐었던 듯 싶다. 웃음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였다. 희극인의 오두방정이 폭소를 연발하게 했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 위에 남는 건 정적 만이 아니었다.
희극인이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희극대상을 따로 했었다. MC대상도 있었다. 각자의 전문분야를 인정했었다. 희극대상이 코미디대상이 되더니 이제는 오직 연예대상만 남았다. 연예물들은 오로지 재미만을 쫓고 있다. 희극이 스탠딩 코미디로 바뀌면서 예전 콩트가 줬던 극적인 요소가 사라졌다. 무대 위에 오른 십여분 내에 관객을 웃겨야만 다음 무대가 보장된다. 일부러 재미없게 하다가 나중에 더 큰 재미를 주는 기법 따위는 발 붙일 자리가 없어졌다. 웃겨야 산다. 희극인, 코미디언이 사라지고 개그맨만 남았다. 개그콘서트가 신호탄이었던 듯 싶다. 웃기는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문호가 넓어졌다. 운동선수나 정치인 등 많은 이들이 연예인이 되고 있다. 희극은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으면서 웃음을 주조해 세상만사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롭게 다룬다는 본질이 사망했다. 풍자 코미디의 상징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대표적이다. '네로 25시'도 못지 않았다. 웃기는게 전부가 아니다. 웃기는 세상을 꺼내며 비웃음도 함께 하자는 게 그 시절 희극인들의 메시지였다. 이 시대에 남은 건 헛웃음뿐이다.
개그 프로그램이 맥을 못추는 것은 현실이 방송보다 웃기기 때문이다. 드라마들이 부진한 건 온갖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을 겪었기 때문이다. 흔히 개그맨은 머리 좋지 않으면 못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뚱해보이는 맹구 친구 오서방(오재미씨)도 실제로 만나면 깜짝 놀라겠다. 한 방송사가 대표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고 하지만 당사자들의 체감온도는 다르겠다. 공중파의 한계를 극복한 케이블방송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잘나간다. 점잖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거기 까지다. 그 이상에 무엇이 있는가. 슬랩스틱은 많다. 욕 비슷하게 하고 희롱 비슷하게 한다. NG가 웃기면 본방송이 잘려나가도 붙여 쓰겠다. 거기까지다. 웃긴 놈들만 살아남는다. 잔인하다. 웃찾사가 없어지고 새 포맷을 찾는다고 한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구닥다리 콩트를 부활했으면 좋겠다. 두들겨 패고 뺨 맞고 붙잡고 넘어지고 패대기 치더라도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옛날 맹구 콧물 먹던 시절 동작그만의 후속 프로그램이 있었다. 군 선후임들이 포장마차에 모여 추억을 되짚는 투의 방송이었다. 재미는 많이 없었지만 얻어가는게 있었다. 착하게 잘 살면 누군가는 찾아주는 구나. 찾는 이가 없는 것을 보니 착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 시절 희극인들이 보고 싶다. 비슷한 사람이라도 환영이다. 쓴웃음뿐인 세상이다. 감초가 필요하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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