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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귀농인 울타리’ 치지 말고 마을 속으로… 진짜 시골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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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3 17:00:00 수정 : 2017-06-03 16: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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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가생이’가 아닌 ‘가온’에 서자 ‘가온’이란 순우리말이 있다. 충정도 사투리로 가생이(가장자리)나 주변이 아닌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이다. 가온을 찍는다는 것은 곧 중심에 두 발을 붙이고 당당히 서는 것을 뜻한다. 초창기 우리 지역의 귀농 선배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명제는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른바 귀농·귀촌인 위주의 마을 만들기 따위는 애초부터 생각해본 적도, 논의한 적도 없다. 기존 주민들과 구별되어 우리만의 본거지나 교두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 집과 농토를 찾아 흩어져서 그 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꿈꿨고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그럼에도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방향은 아무래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였기에, 지역민들로부터 ‘자기들끼리 몰려다닌다’는 비판이 있었고 지금도 비슷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우리 지역 초등학교 학생 중 반수가 귀농·귀촌인의 자녀다.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있어요

지면을 빌려 지역민들께 해명이랄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귀농인들이 자주 모여 일하는 속내는 이렇다. 먼저, 농사 베테랑인 지역민들과는 달리 아직 일이 몸에 배지 않아 지역민들의 일머리에 맞추기에는 몸놀림이나 요령과 끈기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어찌어찌 흉내를 낸다 하더라도 여자들은 정말 어렵다. 큰맘 먹고 어르신들을 따라 일을 나가도 밭매기 선수인 분들과 밭을 매노라면 한참이나 처져서 옆에 분들께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미안하고 힘들어서 아예 품앗이나 날일을 따라나서기가 두려워진다. 이 때문에 일이 한없이 더뎌도 귀농 동료와 이곳 방언으로 ‘개갈 안 나게’(일의 결과가 시원치 않거나 변변치 않게) 논밭에 함께 엎어지게 된다. 남자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역민들이 귀농인들의 이런 속사정을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농부들이 밭일 대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어떤 일을 기획하는 고충과 비슷하리라. 반나절은커녕 한두 시간만 지나도 좀이 쑤셔서 책상 앞을 벗어나려 손사래를 치지 않을까? 세상 일이란 다 그렇다고 본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면 헤맬 수밖에 없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라건대, 지역의 선배 농부님들께서는 적어도 한 번쯤은 농부가 되려고 고생길로 접어든 후배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한다. 대신에 나에게는 꼭 필요하지만 귀농·귀촌인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은 먼저 다가가 맡겨주셔도 좋겠다. 내가 아는 한 시골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지역민의 요구를 애써 외면할 동료는 하나도 없다.

그래도 ‘우리끼리 잘 살자’가 아니고 동네 중심으로 들어가려 하고 마을에 구원이 있다는 귀농·귀촌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대견한가. 잘못 생각하면 스스로 시골 속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규정하며 나만의 울타리를 두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열린 마음을 지향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원하던 시골 사람이 되는 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나라 귀농사의 오랜 기원은 80여 년 전 이 땅에서 시도된 브나로드(vnarod) 운동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민중 속으로”를 외친 대학생들의 캠페인은 4년 만에 끝이 났지만, 수십 년 뒤 이곳에서는 슬로건이나 캠페인이 아닌 삶이 되었고 이미 20년째 그 흐름을 이어왔다. 


도시민과 함게하는 귀농인의 손모내기. 농업에 진입한 절반이 귀농인이다.
#귀농·귀촌인이 바꿔낸 의미 있는 변화들

시골에 귀농·귀촌인이 하나 둘 느는 것 자체가 이미 지역에 꾸준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지만, 시점을 정해 이들이 지역에 끼친 변화를 짚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멀리 내다볼 것 없이 귀농 이후 우리 마을의 변화를 살펴보면 지역에 끼친 변화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정서적인 부문을 살펴보면 지역 민중의 비슷한 연령층에게 미친 결과가 눈에 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농촌에서는 대개 논일은 남자, 밭일은 여자로 크게 구별되어 있다. 하지만 귀농·귀촌 가구는 이러한 공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밭일 중에서도 풀을 매는 일은 여성들의 주업이지만 귀농 가구에서는 남녀 구별이 따로 없다. 농가 살림도 마찬가지여서 시골 특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남자들이 여자의 영역을 서슴없이 넘나든다. 남자들이 아이를 돌보고 밥상을 차리며 빨래를 너는 일도 이곳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농가 살림살이의 성적 역할 전환 못지않게 지역에 신선한 충격을 준 항목이 계획적인 씀씀이다. 도시에서 굳어진 월수입에 맞춘 빡빡한 지출은 귀농 초에 안 쓰거나 덜 쓰는 쪽으로 향했고 농기계를 장만하더라도 지역민들처럼 새 기계를 들여놓는 일은 거의 없다. 농사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손익 분기점을 꼼꼼히 따져보는 습성이 지출을 최소한도로 줄이도록 만든 까닭에서다.

글쓴이만 해도 지금까지 동료와 세 번이나 농기계 공동 운용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그중 두 번은 중고였고, 새 기계는 귀농 초에 보행 이앙기를 후배와 둘이서 산 것이 전부다. 농기계 구입자금을 이용해 산 것으로, 당시 200만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콤바인이나 이앙기는 영업을 하지 않는 한 잠깐 쓰는 농기계로 특성상 감가가 다른 농기계보다 큰 편이다. 이 때문에 두 가구 이상 어울려 사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농작업 또한 구형 농기계의 특성상 보조 작업자가 있어야 효율이 나게 되어 포대형 콤바인은 세 사람이 공동으로 사들였고, 고가의 승용 이앙기는 보행 이앙기를 10년 넘게 사용하고서야 네 농가가 함께 운용했다. 돌이켜보면 중고 농기계로 속도 많이 끓였지만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문제를 풀어가느라 머리를 맞대며 고심했던 기억이 새롭다.

농가 살림이나 농작업에서 남녀의 구분을 없앤 것보다 지역에서 더 크게 평가받는 쪽은 아마도 교육 분야 헌신일 게다. 경상북도 어느 지역에서도 긍정적 의미에서 ‘귀농·귀촌인들이 학교를 접수했다’고 할 정도로 열심인 것처럼 우리도 그에 못지않았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근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 대다수가 선후배 동료이다. 학내 도서관에서 책을 출납하고 독서 지도를 하는 도서 도우미, 학교 급식을 모니터링 하는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귀농 1년 만에 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아 활동한 후배도 나왔다.


지역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 학교가 유지되려면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부모들이 나섰다

학교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관내 초등학교에서 동료가 모여 운동장의 잡초를 제거하던 일이다. 그즈음 학교 운동장에는 풀을 잡기 위해 제초제가 뿌려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가 우리에게 연락을 했고, 즉시 연락망이 가동되어 예취기(刈取機)와 호미를 가지고 학교로 모여들어 풀을 매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에서도 우리의 바람대로 제초 전용 농기구를 구입하는 등 학부모들의 노력을 도왔고, 작업이 있는 날이면 교감 선생님이 나오셔서 격려와 동시에 풍성한 새참을 챙겨주시는 흐뭇한 광경이 펼쳐졌다.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공교육에 광범위한 참여는 중·고등학교라고 다르지 않아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도 연대가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시골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귀촌인들은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미 관내 초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인원의 반 가까이가 귀농·귀촌인의 자녀다. 새롭게 농업에 뛰어드는 비율도 엇비슷해서 뒤집어보면 이들이 아니면 초등학교를 비롯한 교육시설이나 농업·농촌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는 지역민들께서도 귀농·귀촌인이 ‘박힌 돌’을 빼내려는 ‘굴러온 돌’이 아닌 마을과 지역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자 우리 농업·농촌을 이어갈 귀한 후배들로 봐주셨으면 한다. 어찌 보면 마을을 위해 내 아들딸도 못하는 일을 이들이 대신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글쓴이를 포함한 우리들이 더 많이 움직여야 됨을 잘 알고 있다. 그것도 ‘가생이’가 아닌 ‘가온’에서, 마을과 지역의 한가운데서 말이다.

이환의 홍성귀농귀촌종합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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