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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준의엔터키] ‘게임은 나쁜 것’ 편견 거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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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1 01:29:44 수정 : 2017-05-01 01: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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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규제에도 나날이 산업 성장 / e스포츠, 亞게임 정식종목 채택 / 싫든 좋든 세상에 많은 영향 끼쳐 / 재평가 함께 더 세밀한 시선 필요 젊은이들의 흔한 유희가 당구였던 시절, 그러니까 1998년에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은 대학가의 풍경을 크게 바꿨다. 많은 학생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PC방에 ‘스타’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동안 PC방에서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로 스타는 큰 인기를 누렸다. 프로게이머도 등장했다.

국내 1호 프로게이머는 신주영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박창준씨다. 1999년 박씨는 한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게임대회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상금을 받는 자신의 직업을 ‘프로게이머’라고 소개했다. 그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지만 프로게임의 씨를 뿌린 ‘신지식인’이라고 하겠다.

엄형준 산업부 차장
이후 스타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게임단을 만들기 시작하고, 1세대 프로게이머로 분류되는 ‘쌈장’ 이기석이 TV광고에 출연하는 등 인기가 폭발하면서 2001년엔 e스포츠 시장이 태동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현 정부가 목소리 높여 외친 ‘창조경제’다. 이후 임요환, 홍진호 등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등장했고, 캐나다인 기욤 패트리는 스타를 계기로 한국에 왔다가 반 한국 사람이 됐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커진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오락실’에 가는 걸 싫어했고 동네 깡패가 오락실에 출몰한 것도 사실이지만, 게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처럼 스타의 등장으로 게임시장이 커지고 청소년들까지 PC방으로 몰려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 다양한 게임의 등장, 인기 게이머들의 은퇴, 해외의 관심 하락 등이 겹치며 e스포츠에 대한 인기는 시들기 시작했고, 승부조작 사태까지 터지며 스타의 인기는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이후 2010년 스타크래프트2가 발매되며 다시 새로운 게임 리그가 시작됐지만 원조 스타의 명성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스타는 PC방 게임 점유율 순위 5∼6위를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10∼20대에게는 이제 스타는 ‘아재’(아저씨) 게임으로 여겨진다. 현재 10대와 20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임은 소위 ‘롤’로 통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오버워치’다. 두 게임의 PC 점유율을 합치면 50%가 넘는다.

특히 롤은 한국에서 제2의 e스포츠 전성기를 불러왔다. e스포츠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는 수백억대에 달하고 선수들 몸값도 억대로 올라갔다. 또 과거 한국 중심 구도에서 벗어나 중국과 미국, 유럽 리그가 한국을 크게 웃도는 규모로 성장했다. (아직 실력은 한국이 한수 위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처럼 2011년 롤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정부는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을 금지하는 소위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실제 롤은 도입 후 상당기간 게이머들의 욕설과 험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래서 일부 게이머들은 오히려 셧다운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들을 12시 이후에는 만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규제 속에서 게임산업은 더 크게 성장했다. 규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 시선은 이제 거둘 때가 된 것 같다.

게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게임은 거대 산업이 됐고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사아올림픽평의회는 e스포츠를 2022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사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고,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임은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축 중 하나이고, 산업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불모지 같은 환경 속에서 한국의 게임 기업들이 지금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다행스럽다. 하지만 칭찬만 할 건 아니다. 그간 산업구조는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됐다. 야근과 쉼없는 근무로 점철된 게임 업계의 근무환경이나 과도한 아이템 뽑기 장사로 사업을 유지하는 잘못된 관행도 여전하다.

오락실이 부흥기인 1980년대엔 50원,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으면 됐다. 이젠 게임하는 데 동전을 쓰는 일은 없지만, 게임산업의 명암은 동전의 양면처럼 여전히 함께 존재한다. 게임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더 세밀한 시선으로 게임산업을 지켜봐야 할 때다.

엄형준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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