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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심리학] ④ 잘 외운 전공지식… 시험만 보면 까먹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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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2 14:26:28 수정 : 2017-04-22 14: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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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기억은 오래 남는다…‘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대학가에서 중간고사가 한창이다. 하나의 문제, 단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밤을 하얗게 불태우는 학생들. 하지만 시험기간 눈에 불을 켜고 외웠던 무수한 사례와 이름, 공식들은 시험장 문 만 닫고 나오면 까먹기 일쑤다. 아무리 우수한 모범생이었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뒤 전공지식을 또렷이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를 쓰고 외웠던 전공지식은 왜 곧잘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걸까.

소련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 1900-1988)에 따르면 이는 ‘완성’에 대한 심리적 효과 때문이다. 완성된 것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미완성 효과)’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1920년대 초 한 레스토랑에서 비롯됐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레스토랑에 들어선 심리학도 자이가르닉은 주문을 받는 웨이터들을 보다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웨이터들은 어떻게 수많은 주문을 빠짐 없이 기억할 수 있을까. 왜 헷갈리거나 까먹지 않을까. 웨이터들은 주문번호와 테이블 번호, 손님의 얼굴과 음식의 종류 등 수많은 정보를 술술 외웠다.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자이가르닉은 방금 음식을 날라다준 웨이터에게 “방금 옆 테이블에 갖다놓은 메뉴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주문 내용을 술술 외우던 웨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멋쩍어 했다. 다른 웨이터들 역시 완료된 주문을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이가르닉은 웨이터의 사례에서 착안해 베를린 대학의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 교수와 함께 사람들이 완료되지 않은 작업이나, 중단된 작업을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927) 예컨대, 사람들이 불완전한 첫사랑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것도 이러한 심리적 작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웨이터가 외우던 주문처럼 ‘완성되지 못했기’에 더 또렷이 기억난단 것이다.

자이가르닉은 165명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일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과제를 끝까지 방해 없이 끝낸 그룹보다 도중에 방해를 받아 중단한 그룹의 참가자들이 과제에 관한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항상 아쉬운 부분에서 끊는 ‘절단 신공’을 발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절정의 순간에서 미완성된 기억이 다음주 같은 시간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에 앉히리란 믿음에서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어떤 대상을 개별적 부분의 조합이 아닌 전체로 인식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점 등을 강조하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입증하는 데 사용돼 왔다.

미완성의 기억이 오래간단 것은 거꾸로 완성된 기억은 금방 잊힌단 의미이기도 하다. 잘 외운 전공지식들이 시험 종료와 함께 머릿속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모습인 것이다. 또 다른 관문인 졸업이나 취업을 ‘완성’하고 나서 역시도 수많은 지식들은 사라진다. 자꾸 까먹는다고 해서 자신의 기억력을 ‘비루하다’, ‘형편없다’고 탓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학생들이 지식의 ‘완성’ 혹은 ‘목적’을 시험, 취업에만 두고 있다는 것이 깔려있다는 점은 고민해볼 문제다.

한편 자이가르닉 효과로 인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끔찍한 재난이나 범죄 피해경험 등 심리적 충격이 너무나 커서 어떻게 해도 기억이 ‘종결’되지 않을 땐 피해 경험이 반복해 떠오를 수(재경험·flash back) 있다. 이때 상담사들이 “괜찮다”, “이제 다 끝났다” 혹은 “스스로와 상대를 용서하라”, “이제 그만 흘려보내라” 등 조언을 하는 것은 내적으로 매듭을 짓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완성이 돼야만 더 쉽게 기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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