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푸드트럭 음식이 싸구려라구요? “우린 스터번… 새 문화 기대하시라”

입력 : 2017-04-11 23:03:24 수정 : 2017-04-11 23:03:24

인쇄 메일 url 공유 - +

‘셰프의 길’ 틀 바꾼 임정엽·정우성·조규희 대표 먹방, 쿡방 붐이 일면서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다. 이런 바람을 타고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 일본의 쓰지(?)와 함께 세계 명문 요리학교에 손꼽히는 미국 뉴욕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 세 명의 젊은 셰프가 뭉쳤다. 자칭 셰프가 넘쳐나는 시기에 이들은 기존 틀을 깨는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푸드트럭 페스티벌에서 조규희, 정우성 셰프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들을 대신해 이날은 임정엽 셰프가 레스토랑을 지켰다.
스터번 제공

지금까지 전형적인 셰프들은 레스토랑을 차린 뒤 방송을 타서 잘나가면 대기업과 손잡고 캠페인을 하거나, 홈쇼핑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상품을 출시해 대박을 치는 게 하나의 코스였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오너셰프라는 명함에 만족하지 않고, 푸드트럭을 사들여 각종 페스티벌을 종횡무진한다. 일회용 이벤트성 푸드트럭이 아니다. 이들의 푸드트럭은 기회만 되면 출동한다. 밑바닥에서 고생해서 안정을 찾으면 안주하는 것이 수순인 대한민국 문화를 역주행하는 셈이다.

서울 역삼역 인근, 이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스터번(Stubborn·고집스러운)’에서 ‘푸드트럭 모는 오너셰프’ 임정엽(38)·정우성(33)·조규희 대표(35)를 만났다.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게 우리 스타일”

개성 강한 이들의 첫 만남은 뉴욕 CIA였다. 호텔 조리학과(조규희), 경영학과(임정엽), 식품공학과(정우성) 등 배경은 서로 달랐지만 서른 즈음의 남자들끼리 고민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더 모던’ ‘피숄린’ 등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고 귀국한 후 이들은 ‘팀’을 이루게 됐다. 
조규희·임정엽·정우성 셰프(왼쪽부터)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스터번’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대니 마이어처럼 다양한 음식, 다양한 레스토랑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고 푸드트럭 운영 이유를 밝혔다.
서상배 선임기자

사실 ‘스터번’이 이들의 첫 도전은 아니다. 조씨와 정씨가 의기투합해 2015년 동대문 두산타워에 150평 규모의 ‘어번 나이프 태번(Urban Knife Tavern)’을 열었다가 8개월 만에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 장사는 잘됐다. 하지만 중국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돈벌이에 급급한 대기업 면세점이 이들을 밀어냈다. ‘일방적인 횡포’라고 항의하며 싸우길 수개월,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허무한 실패를 경험한 후 세 명이 다시 뭉쳐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사무실 공간으로 구입한 역삼동 지하공간을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했다. 파인 다이닝이 아닌 뉴요커들이 편안하게 즐기는 캐주얼 레스토랑 콘셉트였다. 주변에서는 “백반집, 돈가스집, 중국집이 아닌 뉴욕식 레스토랑으로는 주변 회사원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만류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점심에 편안하게 비즈니스 런치를 할 수 있는 장소가 근처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뉴욕처럼 느낄 수 있게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도 이들이 직접 골랐다. 식용 도축 동물의 모든 부위를 활용한다는 ‘노즈 투 테일’(nose-to-tail)의 트렌드에 따라 돼지꼬리 튀김, 돼지머리, 소내장 등 다양한 부위의 요리들을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현지 맛 그대로 만들었다. 

그렇게 고집스레 만든 레스토랑인 만큼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한 손님들이 “고향(?)에 온 것 같다”고 말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 이런 손님들을 만나면 ‘뉴욕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온갖 서비스들을 내놓는다. 그래서 집에서는 구박을 받는다. “너희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고. 그런데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스타일로 직진한다. 왜. “우린 스터번이에요. 고집있어요.”

◆푸드트럭 모는 강남 레스토랑 사장님

강남 레스토랑은 이들의 종착역이 아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하다. “한국에 쉐이크쉑(Shake Shack)으로 잘 알려진 미국 ‘유니언스퀘어 호스피탤리티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대니 마이어도 그래머시 태번, 더 모던, 유니언스퀘어 카페 등 레스토랑마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줬어요. 이런 게 도전이죠. 레스토랑 하나 성공해서 판박이로 2호점, 3호점을 만들고 그냥 끝나는 건 재미없잖아요. 음식산업의 다양한 색깔을 늘려가는 것, 이게 저희 목표죠. 푸드트럭은 그 다양한 색깔 중 하나고요.”

이들에게 푸드트럭은 영세한 상인들이 대충 만들어 내놓은 싸구려 음식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사람들이 길거리 음악을 들으며 푸드트럭 음식을 먹고 대화를 즐기듯 우리도 그런 축제 같은 푸드트럭 산업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싼값에 맛있는 한 끼, 이상적인 얘기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 없는 저소득층이나 젊은 세대가 큰 자본 투입 없이 접근하는 것이 푸드트럭이다. 오히려 전문 셰프의 푸드트럭 진입이 기존 업자들에겐 더 불편한 소식 아닐까.

“저희가 돈을 벌기 위해 푸드트럭을 했을까요? 아니죠. 푸드트럭은 저희가 생각한 다양성 중 하나예요. 푸드트럭 ‘성공 모델’을 만들고 나면 저희는 손뗄 거예요. 그 성공 모델을 전문적인 사람들에게 물려주고,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이들은 그 성공모델 가능성을 지난해 몇 차례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확인했다. 지난 10월 남산 한옥마을 축제 행사에서 주변 지인들을 ‘꼬셔’ 맥주 트럭, 스낵 트럭, 햄버거·스테이크 트럭 등 하나의 코스요리처럼 구성했다. 다양한 푸드트럭을 돌아가며 전채와 음료, 식사, 디저트를 만끽하면서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푸드트럭 간 경쟁으로 인한 제로섬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시너지였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푸드트럭을 샀지만 이를 운영할 수 있는 곳은 몇 개의 페스티벌에 한정돼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장벽이 높아야 할 위생이나 안전과 관련한 규제는 전무한 수준이다. 매일 푸드트럭으로 거리를 누빌 거라는 기대와 달리, 이들의 푸드트럭이 꽃피는 봄이 와도 종종 지하주차장에 묶여 있는 이유다.

“미국 푸드트럭은 크기 자체가 달라요. 냉장시설, 급배수시설 등 규율이 까다롭기 때문이죠. 또 공인 허가 된 키친에서만 요리를 준비할 수 있는 등 위생과 관련한 기준이 확실해요. 그런데 한국은 위생, 수도 기준조차 제대로 없어요.”

그래도 푸드트럭을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운영할 예정이다. 욕심 많은 이들은 푸드 컨설팅도 진행 중이다. 그다음엔 또 뭘 하고 싶냐고 묻자 “누군가 뉴욕식 환갑 잔치를 부탁한다면 당장 달려갈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의 명함엔 ‘푸드 엔터테인먼트’가 적혀있다. 이들에게 요리는 밥벌이가 아니라 유희이자 오락이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사진=서상배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즈나 정세비 '빛나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