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린 남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어딜 봐도 안내판이 없길래 세워도 되는 줄 알았다”며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차에서 내린 여성도 같은 질문에 “모르겠네요”라며 얼른 갈 길을 향했다.
◆ “후면주차 나쁜 거 알지만 보수 계획은 아직…”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5일, 서울의 한 박물관 야외 주차장.
주차장에 선 차량 90여대 중 화단을 향해 가스 배출구가 향한 차만 70대가 넘었다. 전체 주차 차량의 80% 수준. 10대 중 8대가 후면주차다. 배기가스가 화단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공공기관이 운전자들의 전면주차를 독려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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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의 한 박물관 야외 주차장. 전면주차 안내판이었을 그것이 훼손된 채로 방치됐다. 자음 하나만으로 전면주차 안내판이라 추정했는데, 박물관 관계자는 맞다고 했다. 그 옆에는 후면주차 차량. |
‘전면주차’ 안내판을 보지 못했다는 말에 주차장을 둘러봤다.
몇 차례 돈 뒤에야 기자는 ‘면’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은 안내판 하나를 겨우 발견했다. 그러자 비슷한 안내판이 하나 더 보였다. ‘전면주차’ 안내판이 총 2개가 서 있던 것으로 추정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부실한 안내판을 인정했다. 후면주차를 보는 시각이 좋지 않다는 것도 동의했다. 하지만 보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언제 새로운 안내판을 세울지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차장 위탁운영 업체와 논의 계획 중이라고만 했다.
◆ “사무실로 들어오는 배기가스”…메아리로 그친 ‘전면주차’ 당부
서울의 한 공공기관도 전면주차가 안 지켜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물 외벽에 ‘전면주차’를 당부하는 안내판이 붙었지만, 바로 앞 차량 배기가스 배출구는 벽을 향했다. 이 건물에는 민원실과 일부 부서가 자리했다.
관내 화단 근처에서도 후면주차 차량 3대가 추가로 발견됐다. 주차장에 선 차량 20여대 중 후면주차 차량은 6대였다. 전체의 30% 수준이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후면주차를 하면 사무실로 매연이 다 들어와서 2년 전쯤 전면주차 안내문을 붙였다”고 말했다.
전면주차가 메아리로 그친 것에 대해 관계자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근무자들의 애로사항을 고려해달라며 전면주차를 당부했다.
◆ ‘부르릉’ 후면주차 배기가스…아파트 1층 주민은 괴롭다
사회가 전면주차를 권하는 건 자동차 배기가스에 담긴 일산화탄소,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직접 영향 주는 걸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일산화탄소는 두통을 일으키고,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은 발암물질이나 유해물질 등으로 분류된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는 디젤(경유)차 배기가스를 석면, 비소와 같은 1등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이따금 아파트 내에서 후면주차로 인한 다툼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주거단지로 눈을 돌리면 ‘1층’ 주민 건강과도 직결된다고 말한다. 시동을 건 차량에서 5m 정도 떨어진 아파트 1층 출입구 주변 일산화탄소 농도가 실내 기준치를 20배나 웃돈 200ppm을 기록했다는 실험도 지난 2014년 국내 매체가 소개한 바 있다.
후면주차에 따른 민원이 있는지 알아보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수만 약 30개 동. 주차장을 메운 차가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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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후면주차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구가 인도까지 불쑥 튀어나와 있다. 시동만 걸면 가스는 화단뿐만 아니라 1층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
경비원 A씨는 “주민들은 전면주차를 하지만, 간혹 외부 차량이 후면주차를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며 “그럴 때 가끔 민원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경비원 B씨는 “후면주차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불평하는 1층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다”며 “요즘에는 잘못 주차한 차량의 와이퍼에 안내문을 끼워 넣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매연이 화단과 1층 세대에 피해를 주게 되니 전면주차를 꼭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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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 역시나 이곳도…. |
‘전면주차’와 ‘후면주차’.
차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논쟁거리가 될 거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김창균 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배기가스에는 유해한 물질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후면주차가 전면주차보다 화단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노출 정도도 클 수밖에 없다”며 “후면주차도 논쟁거리지만 사실은 가스를 오래 내뿜는 공회전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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