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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와인평론 거목 잰시스 로빈슨 "내추럴 와인이 주목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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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6 06:00:00 수정 : 2017-04-05 22: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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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첫 단독 인터뷰 / 파커와 샤토 파비 2003 평가 논쟁 "지금도 그때 판단이 맞다고 여겨"

원시림으로 뒤덮인 깊은 숲속의 신비로움을 띤 옹달샘. 어울려 노는 짙은 보라빛 두 나비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그림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운 연인들. 주인공이 천재 와인평론가인 부친의 유언장에 묘사된 12개의 와인을 찾아 나서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6권에 등장하는 제1사도 와인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크뤼 레 자무레즈(Chambolle-Musigny 1er cru Les Amoureuses)는 이렇게 묘사된다. 부르고뉴의 뛰어난 생산자 조르쥬 루미에(Georges Roumier)가 빚는 피노누아 와인으로 레 자무레즈는 ‘연인들’이라는 뜻이다. 이 와인은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면서 한때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이 한국 언론과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과 최근의 와인 트렌드를 설명하고 있다. 뒤셀도르프=최현태 기자
한 잔의 레 자무레즈가 평범하던 20대 대학생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바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67) 얘기다. 한국 언론 최초로 지난달 19일 세계 최대 와인 전시회 프로바인(Prowein)이 열린 독일 뒤셀도르프 전시장 메쎄 뒤셀도르프 프레스센터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영국 출신의 잰시스는 세계적 와인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이며 와인매체 편집자로 미국의 로버트 파커와 함께 글로벌 와인시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인터뷰 장소에 나와있던 그는 안경넘어 지적인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잰시스는 옥스포드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전공과 전혀 다른 와인의 길을 선택하게 됐을까. “제가 어린 시절 영국은 와인을 많이 마시던 시기는 아니었어요.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가서야 와인을 접하기 시작했죠. 어느날 남자 친구와 함께 샹몰 뮈지니 레자무레즈 1951년산을 마셨는데 너무나 깜짝 놀란거에요. 단순한 와인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후각과 미각만 자극을 하는게 아니라 무한한 지적 자극과 호기심을 느꼈지요. 그 길로 와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답니다”.

젠시스로빈슨닷컴 제공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샤토 파비(Château Pavie) 논쟁’ 관련 질문을 돌직구로 던졌다. 보르도 생떼밀리옹의 그랑크뤼 와인 샤토 파비 2003산 평가를 놓고 파커는 100점 만점에 98점을 주었지만 잰시스는 20점 만점에 12점의 낮은 점수를 줬다. 당시 파커는 “완벽주의자인 오너의 노력으로 풍요함과 광물성, 표현력 그리고 고상함을 두루 갖춘 숭고한 와인이 탄생했다”고 극찬했다. 반면 잰시스는 “파비가 전통 생떼밀리옹 방식을 고수하지 못하고 파커가 좋아할 만한 메독스타일로 바꿨다. 식욕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너무 익은 듯한 아로마와 풋내는 보르도 레드가 아니라 늦게 수확한 진판델을 상기시킨다”며 혹평했다.

잰시스는 당시 이런 평가를 아직 옳다고 믿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파커가 너무 과장해서 비판했다고 말해서 이미 서로 화해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당시 판단과 주장이 맞다고 생각해요. 2005년에 다시 파비 와인을 테이스팅했는데 역시 비슷한 스타일로 만들어 그때도 좋지 않게 평가했거든요. 하지만 최근들어 파비는 그때와는 달리 잘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와인 한병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평가 점수는 구매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자의 이런 노력들이 단순한 점수로 평가되는 것이 것이 과연 옳을까. “와인을 획일적으로 점수화하는 것은 반대해요. 와인 유통·판매업자들이 점수에만 의존해서 좋은 와인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기 때문이에요. 또 점수 때문에 와인이 다양성을 잃고 와인 마켓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돼버리지요. 제가 운영하는 잰시스로빈스닷컴에서도 20점 만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는 점수 주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실제 현재 미국에서는 와인에 점수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반(反) 파커주의’ 운동이 일고 있다. 잰시스는 이를 “액션에 대한 리액션”이라고 평가했다. 즉 어떤 한가지가 너무 과하면 반대하는 세력이 생길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와인을 획일적으로 점수화 하는 행위를 이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때라는 지적으로 받아들여 진다.

 잰시스가 옥스포드를 졸업하던 1971년에는 와인 관련 일은 중요한 직업군이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와인과 푸드 관련 비지니스를 한 것은 아니에요. 졸업후 여행사에 취직했어요. 그때 프랑스를 자주 가면서 와인과 음식의 세계에 매료돼 이 분야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하게 된 거죠”. 

잰시스 로빈슨이 펴닌 Wine Graps. 전세계에 생산되는 포도품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잇다. 뒤셀도르프=최현태 기자
그는 목표를 위해 1975년 와인트레이드 매거진 와인 앤 스피릿(Wine & Spirit)에서 와인 전문 기자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는 처음에 어시스턴트였지만 여행사에서 쌓은 업무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곧 에디터가 됐다. 1980년 프리랜서로 선데이 타임즈 와인관련 섹션 통신원으로 활동했고 국제공인와인교육과정인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코스를 밟기 시작해 최고 단계인 디플로마까지 획득했다. 

 

젠시스로빈슨닷컴 제공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1984년 당시만 해도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와인전문가의 최고 경지 학위인 마스터 오브 와인(MW) 시험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1955년 영국의 와인마스터협회가 설립한 MW는 와인 거래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던 가장 권위있는 학위로 1984년 외부에게 개방됐는데 잰시스는 그해에 외부인으로 처음으로 MW를 취득하는 기록을 세웠다. MW는 취득까지 수년이 걸리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으로 현재 전세계 356명에 불과하며 한국인은 아직 없다. 여성 MW는 118명정도가 있다.

남자들이 우위를 점하던 와인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을 법했다. “어떤 산업이나 유리천정이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여자였기 때문에 더 유리했다고 봐요. 저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와인 테이스팅을 잘한다고 생각거든요. 실제로 최근 MW는 여자가 합격률이 훨씬 더 높답니다. 따라서 오히려 특혜를 받고 일한것이나 마찬가지죠”. 

 그의 화려한 경력에 비하면 매우 겸손함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는 현재 세계 3대 신문인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지에 매주 와인칼럼을 기고하는 유명 저널리스트드이며 와인 관련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 진행자 겸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또 개인 홈페이지 잰시스로빈슨닷컴(jancisrobinson.com)을 운영하며 와인 정보와 함께 와인 평가를 통해 세계 와인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와인셀러를 직접 관리할 정도다. 200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고 유력 와인 매체와 와인 업계가 선정하는 여러 종류의 올해의 인물상도 수상했다.

젠시스로빈슨닷컴 제공
수많은 와인관련 서적도 저술했다. 와인관련 방대한 지식을 정리한 백과사전  ‘옥스퍼드 와인 안내서(The Oxford Companion to Wine)’, 영국 와인 저널리스트 휴 존슨과 함께 펴낸 ‘와인 아틀라스(Wine Atlas)’가 대표적으로 와인 전문가들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또 BBC와 함께 DVD로 제작한 ‘잰시스 로빈슨의 와인 코스’도 와인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잰시스가 이처럼 와인분야로 큰 업적을 쌓게 된 것은 와인 비평가로서의 독립성이라는 나름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란다. “와인 유통업자나 생산자로부터 영향 받는 것을 엄격하게 차단해 누구의 입김에도 좌우되지 않는 독립성을 유지할려고 노력해요. 또 굉장히 성실하게 일하는 편이죠. 특히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하는게 매우 중요하답니다. 그래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요”.

와인을 평가할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살피는 지 궁금했다. “와인의 밸런스와 리프레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재미가 느껴져야 하고 더 알고 싶고 더 경험하고 싶고 잡아 끄는 어떤 매력이 있는 와인인지를 중요하게 살펴본답니다”

젠시스 로빈슨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의 요청으로 손가락으로 `스몰 하트`를 그리며 한국 와인소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잰시스는 최근 글로벌 와인의 주요 트렌드로 내추럴 와인을 꼽았다. 이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과정에서 일체의 화학적인 물질을 추가하지 않고 만든 와인을 말한다. “요즘 와인들은 신선함이 더욱 강조되고 알콜도수는 더 낮아지고 있어요. 오크통 숙성을 적게 하고 첨가물도 최소화하며 효모도 그 지역 고유의 천연효모를 발굴해서 활용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지요. 또 포도밭은 구획별로 최대한 세분화해서 그 땅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고자 하지요. 그래서 결국 최근 나오게 된 트렌드가 오가닉, 바이오다이나믹, 내추럴 와인이랍니다. 와인 산화를 방지하는 이산화황도 최소화거나 아예 안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 앞으로 내추럴 와인이 큰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뒤셀도르프=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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