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저조에도 '신성한 규약?'…약속된 급여·퇴직금 두둑히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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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당기순이익 및 CEO 연봉, 증감액 비교(2016년 사업보고서 미공시 증권사 제외)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2015년 주식시장 호황에 최대 순이익을 올렸던 증권사들이 시장 불황으로 작년엔 수익성이 급감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같은 실적 부진에도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은 오히려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증권사의 경우 실적 부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CEO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증권사 전체 순이익 규모(2조1338억원)는 신한금융지주(2조7748억원) 한 곳보다 적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증권사 경영진들은 정해진 급여와 퇴직금을 받아챙기고 있다. 반면 직원들은 희망퇴직에 내몰리고 있다.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직원들만 지고 있는 셈이다.
4일 세계파이낸스가 작년 증권사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1개 증권사 중 16개 증권사의 작년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했으나 이중 12곳(75%)의 CEO 연봉은 되레 증가했다.
순이익이 감소한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대신증권, 미래에셋대우, KB증권, 유진투자증권, HMC투자증권, 유안타증권, 이베스트증권, SK증권, 하이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이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홍성국 전 사장은 2015년 7억3700만원에서 2016년 15억5900만원으로 연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세부내역을 보면 홍 전 사장은 퇴직금 등 기타소득으로 7억7000만원을 받았다. 전년과 같이 직책수당이 1억6229만원이 지급됐다. 특이한 점은 전년엔 없었던 기타 보수(1회성)로 5억9500만원이 지급됐다는 점이다. 퇴직소득은 퇴직금 1억원에 이사회 결의로 특별 퇴직금 2억원이 더해졌다.
홍 전사장이 미래에셋대우 탄생에 기여했고 대우증권 첫 공채출신 사장이라는 점이 연봉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또 30년간 대우증권에서 근무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 것에 대한 위로금이 추가 지급된 것으로 보여진다.
작년 통합비용 발생 등으로 4억원 적자를 낸 KB증권도 윤경은 사장이 전년 대비 75% 늘어난 27억원의 연봉을 받았다. 회사 측은 2014년 흑자전환(374억원)과 2015년 흑자(2796억원)에 대한 공로로 포상금이 지급됐다고 공시했다. 2015년 당기순이익이 2014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해 대표이사에게 성과급으로 연급여의 약 85%가 지급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KB증권은 작년 4분기에 13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증권 시장 불황과 채권금리 상승으로 파생상품손실 950억원, 희망퇴직 비용 380억원 등이 겹쳤다. 그러나 희망퇴직 비용 380억원을 제외하더라고 KB증권의 흑자폭은 전년 대비 900% 가까이 하락한 37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키움증권도 순이익이 소폭 줄었지만 권용원 사장이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해 24억원을 수령, 총 29억원을 받아 업계 연봉킹에 올랐다. 권 사장의 급여는 4억원 정도로 다른 중형 증권사 CEO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순이익이 전년 대비 16.7% 줄었지만 대표이사와 이사들의 연봉은 40% 늘어난 34억여원이었다. 이중 유상호 사장이 전년보다 7억원 증가한 24억2100만원을 수령했다. 2016년도 당기순이익이 소폭 줄어들었지만 지속적으로 업계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 따른 대가로 보여진다. 유 사장은 11년째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게 됐는데 CEO로서 누적된 보수 총액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대신증권은 작년 순이익이 2015년 대비 43.6% 급감했지만 나재철 사장의 연봉은 15.9%나 증가했다. 2015년 성과급과 2014~2015년 성과주식이연분 등이 지급되면서 상여금이 2억원 가량 늘었다.
2015년 대비 11.5% 감소한 순이익 성적표를 받아든 유진투자증권 유창수 사장도 36% 늘어난 14억1800만원을 받았다. 6년째 CEO를 맡는 유 사장은 급여로만 10억원이 지급됐는데 11년째 CEO로 근무하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급여로 5억원대를 받는 것에 비하면 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외에 중국 광대증권과의 업무협약 체결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일본주식 중개 서비스를 개시한 데 따른 성과급으로 4억원 지급됐다.
유안타증권은 순이익이 2015년 대비 반토막 났지만 서명석 사장과 황웨이청 사장에게 각각 1억원이 넘는 상여금이 지급되면서 급여가 소폭 올랐다. 자기자본수익률(ROE)와 목표이익 달성에 따른 성과급이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HMC투자증권 김흥제 전 사장도 성과급과 퇴직금 명목 등으로 2015년 대비 211% 늘어난 18억5000만원이 지급됐다. HMC증권이 업계 불황에도 4분기에 순이익 398억원을 기록한 것과 재무건전성 개선으로 기업신용등급 전망이 ''A+ 부정적''에서 ''A+ 안정적''으로 재상향된 것에 대한 인센티브 성격으로 해석된다.
실적 부진으로 CEO 연봉이 순이익 대비 절반이나 되는 회사도 있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CEO연봉이 순이익의 1% 내외였지만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순이익 대비 CEO 연봉 비율을 보면 작년 64억원의 순이익을 낸 동부증권의 경우 고원종 사장의 연봉이 5억8000만원으로 9%를 차지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전년 대비 순이익이 90% 급감한 2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지만 서태환 전 사장이 퇴직금까지 16억3700만원을 받아가 비율이 56%에 달했다.
SK증권 김신 사장은 2015년 대비 30% 늘어난 9억6900만원을 수령해 순이익 대비 연봉 비율이 8.5%였다. 2015년 성과가 2016년 초에 지급되면서 2016년 실적 부진에도 급여가 상당폭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금융권 수장들의 연봉이 실적과 상관없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잠금 장치가 있어야 된다는 지적이다. 한때 천문학적인 액수로 화제를 모았던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 CEO들의 급여에 제한을 두는 것과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AIG 경영진은 막대한 손실을 입힌 뒤에도 ''신성한 규약''에 의한 것이라면서 정해진 퇴직금을 모두 받아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투자업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며 "국민들의 돈으로 돈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경영진이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영일 기자 jyi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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