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이모(82)씨는 “당장 오늘 어디서 머무르시냐”는 질문에 대답 없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착잡한 표정의 이씨 어깨 너머로 까만 잿더미가 한가득 보였다. 불에 타버린 그의 터전이었다. 이날 오전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이곳에 화재가 발생해 2시간여 동안 29개 세대를 태우고서야 불길이 잡혔다. 25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는 이씨는 “당장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돈이나 있으면 나가서 전셋방이라도 한 칸 구할 텐데 그럴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착잡해했다.
경찰은 “야외용 가스히터를 손질하던 중 가스가 새어나온 것을 모르고 점화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붙었다”는 주민 A(69)씨의 진술을 확보하고 실화(失火)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구룡마을은 1970~80년대 각종 공공·건설 사업 과정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다. 90년대 후반 한때 3000세대가 들어서기도 했던 이곳은 현재 110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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