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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갤러리] 털끝만큼도 어그러짐 없이… 운명을 새기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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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1 21:51:04 수정 : 2017-04-11 16: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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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무제’ 벼루는 씻겨 나가 먹물이 돼, 그림이 되고 글자가 된다. 강가에 놓인 돌도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물을 따라 흘러가며 뒤엉키고 굴러가면서 나름의 형상을 만들어 간다. 미국 뉴욕에서 6년간 머물다 최근 귀국한 이상용 작가는 벼루와 돌을 긁어 흔적을 만드는 작가다. 벼루는 오랜 시간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다가 작가의 손에 들어온 것들이다. 돌도 수많은 시간들을 굴러서 그에게 왔다. 벼루도 돌도 언젠가는 그의 손에 들어온 것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다만 그를 스쳐지나간 흔적들을 남길 뿐이다. 그것이 작가에게는 그림이 되고 작품이 된다. 작가는 이를 운명이라 했다. 회화·조각·설치·사진 등 거의 모든 예술장르에 그는 운명을 새겨가고 있는 것이다. 캔버스작업조차도 촘촘한 올에 새기듯 작업을 한다.

작가의 관심사가 역사·민속학·인류학·사회학·고전 물리학·동양 철학 등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작품의 범주를 짐작해 볼 뿐이다. 여러 가르침의 경전에도 조예가 깊다는 점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예술이 무엇인가 묻는 것은 바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170×80㎝, 4월 6∼29일 갤러리BK)
우리는 4차원의 시공간 속에 선택이라는 의지로 삶을 만들어 간다. 작가에게 그것을 글이 아닌 시각과 질감으로 말하는 것이 예술이고 작품이 된다. 사실 인류는 태초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던 그 시절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러한 마법적 세계를 비판하기 위하여 문자를 발명했다. 문자는 합리적 이성을 의식으로부터 이끌어내 발전시켰다. 그리고 과학적 세계관이 형성되고, 긴 시간에 걸쳐 기술적 근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인 동양은 달랐다. 한자는 그림과 문자가 화합되고 조화된 일원적 문자체계였다. 한자는 점을 치는 시초 점의 문자로부터 발전된 형태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합리적 이성으로 자연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실증주의를 중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항상성에 탄복하고 우리가 만물에 귀속된 존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의 세계에 주목했다. 조화는 예의인데, 예의는 내면의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술은 외면적 예의와 내면적 아름다움의 정성스러운 드러냄이다. 내면에 털끝만큼도 어그러짐 없는 정성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상용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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