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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미국판 영화 '재심'…23년 만에 살인범 그림자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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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인 남편을 만날 때마다 니콜 해밀턴은 두 사람이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다고 상상했다. 맛있는 과자를 먹고, 벤치에 앉아 풍경을 즐기며 소풍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교도소의 작은 공원이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CNN에 따르면 데릭은 1991년 친구 나다니엘 캐쉬를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CNN 캡처.



데릭은 죄가 없었다. 친구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캐쉬가 살해당할 당시 사건 장소 뉴욕 브루클린의 한 모처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떨어진 코네티컷주 뉴 헤이븐에 있었다.

경찰은 데릭을 살해혐의로 붙잡았다. 캐쉬의 여자친구 스미스는 데릭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총으로 쏘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위증이었다. 루이스 스카렐라 형사가 스미스의 아이들을 붙잡고 데릭이 살인범이라고 증언하도록 강요했다.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가하겠다고 협박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다만, 스카렐라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 CNN 캡처.


 

위증과 증인 불출석 등으로 억울하게 징역 25년을 선고받아야 했던 데릭. 미국 CNN 캡처.



데릭은 법원에서도 무죄를 증명할 수 없었다.

뉴 헤이븐에서 함께 있었던 데릭의 지인 중 하나가 재판 당일 병원에 실려 갔고, 또 다른 두 지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증인 출석 시간에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래저래 유죄의 추가 데릭 쪽으로 기울었고,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반드시 무죄판결을 얻어내리라 결심한 데릭은 교도소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전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억울하게 수감된 이들과 함께 결백 증명을 위한 모임도 꾸렸다. 자기의 무죄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동료 죄수의 결백도 밝혀내자는 의미였다. 죄수들 사이에서 평판을 얻은 데릭은 ‘교도소의 변호사’로 불리기에 이른다.

재판을 앞두고 데릭의 부인이 매몰차게 그를 떠났다. 졸지에 버려졌지만 모두가 데릭을 등진 건 아니었다. 친구였던 니콜이 그중 하나다.

세상에 무죄를 밝혀내자며 뜻을 모은 두 사람은 어느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2005년 교도소에서 교도관의 도움을 받아 결혼식도 올렸다. 남편이 교도소에 있는 동안 니콜은 매주 주말마다 차로 6시간을 달려 코네티컷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데릭을 만나러 갔다.

인생에서 최악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내와의 전화통화 30분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다고 데릭은 당시를 회상한다.

 

수감 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데릭의 사진. 미국 CNN 캡처.



데릭의 감옥생활은 현직 변호사와 기자가 만나면서 2010년 어느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조나단 에델스테인과 뉴욕데일리뉴스의 한 기자가 데릭의 억울한 수감생활을 조명했고, 그의 이야기는 현지 매체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재판 당시 참석하지 못했던 데릭의 두 증인까지 뒤늦게 진실을 알리면서 2011년 어느날 데릭은 가석방 덕택에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진범이 잡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상에 나왔으니 자기를 옭아맸던 살인범의 누명을 벗는 일이 남아있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데릭. 미국 CNN 캡처.



데릭의 꿈은 결국 이뤄졌다.

2014년 미국 뉴욕 대법원은 데릭이 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그의 죄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마음 한구석에 드리웠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낸 순간이었다. CNN은 억울하게 수감되었던 이가 스스로 무죄 판결을 얻어낸 특히 뉴욕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2015년 데릭은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데릭의 사연은 미국 미시건 대학의 로스쿨이 기획한 '국립 무죄 등기소(The National Registry of Exonerations)'의 자료에도 올라가 있다.

 

뉴저지주 집 근처 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데릭의 가족. 미국 CNN 캡처.


CNN에 따르면 억울한 수감생활 후 재판으로 무죄 판결을 얻어낸 사례는 2013년 미국 전체 87건에서 지난해에는 166건으로 3년 사이 약 2배 정도 늘어났다. 1989년 이래 ‘억울한 피고인’ 약 1900명이 죄인이라는 사슬을 끊었다고 등기소는 밝힌다.

이 중 절반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인종차별성 판결의 가능성이 보인다.

4살 딸 손을 붙잡고 뉴저지의 집 근처 공원을 거니는 데릭과 니콜은 더 이상 센트럴파크에 있다는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네 탄 딸의 등을 밀어주고, 웃음으로 가득 찬 오후를 보내는 이들 부부는 상상 속의 공원이 아닌 현실의 소풍을 즐기고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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