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방송은 우리의 좋은 참고서였다. 방송 종사자들은 일본 프로그램을 참고하기 위해 일본 방송을 볼 수 있는 부산이나 현지까지 직접 출장을 가기도 했고, 일본에서 보내온 방송 복사본은 좋은 연구자료였다. 그 결과 일본 방송 포맷이 개편 아이디어 이름으로 포장돼서 편성되기도 했다. 이후 모방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일본 방송사의 항의가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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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
이후 한국의 콘텐츠는 일본의 위성·케이블TV는 물론 지상파까지 확대 편성됐고,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콘텐츠를 합친 것과 맞먹는 공간을 차지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중년층들의 한국드라마를 원어로 보기 위한 한글공부 열기도 대단했고, 한국의 드라마 촬영지는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일본에서 한국콘텐츠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에서 방송채널을 독자 편성해서 운영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해당국가의 채널 허가 및 진입, 저작권 확보 등 방송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인력, 사무실, 방송시설, 번역자막, 송출 등 운영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방송을 통해서 수익을 내야 한다. 우리의 콘텐츠를 통해서 일본에 한국의 실상이나 문화를 확산한다는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외부의 지원은 일체 없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일본에서 독자적인 채널을 운영하기로 하고, 2005년 일본에서 자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준비 팀이 2005년 10월 일본에 가서 그 의지를 밝히자 일본 정부나 방송 관계자들은 1년 후인 10월의 방송 개시를 제안했다. 이것은 영국의 BBC나 미국의 CNN이 일본에 진출해서 준비하고 방송하는 데 1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 독립의 의지를 갖고, 그들보다 7개월을 앞당겨서 3월 1일 전파발사와 시험방송을 설득했고, 여기에는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숱한 난관과 극복이 있었다. 그리고 11년이 흐른 지금 일본에서는 450만명이 넘는 가구, 300여개 호텔에서 독자 편성된 KBS채널을 볼 수 있다. 괄목할 만한 발전이다.
중국과 일본은 콘텐츠의 큰 시장이다. 그러나 중국은 뚜렷한 설명 없이 시장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예측불허, 신뢰가 안 간다. 이에 비해 일본은 시장경제원리가 철저하게 보장되고, 저작권 보호도 확실해서 장기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일본의 콘텐츠 시장을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지금은 콘텐츠 제작과 유통,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시대이다.
왕현철 KBS미디어 감사·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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