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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 첫 스웨덴 유학생…조선 여성 해방 꿈꾼 최영숙의 삶 오롯이

입력 : 2017-03-02 20:48:05 수정 : 2017-03-02 20: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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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장편 ‘검은 땅에…’ 펴내 아시아 최초로 스웨덴 유학을 다녀온 최영숙(崔英淑·1906~1932)이라는 조선 여인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스물여섯 해를 살다가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이 여성은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당찬 존재였다.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희문여학교를 졸업했고 안창호의 흥사단에 가입해 도산을 돕다가 스웨덴 여성학자의 저서를 탐독한 후 조선에서 여성 노동운동을 펼치겠다는 꿈을 안고 스무살 나이에 두달 가까이 걸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로 스웨덴에 갔다. 이 여성의 삶이 강동수(56·사진)의 장편 ‘검은 땅에 빛나는’(해성)으로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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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신춘문예(1994년)로 등단한 이래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살면서 소설을 집필해온 강동수는 10년 전 최영숙이라는 존재를 월간지에서 우연히 접한 뒤 줄곧 그녀의 행적을 자료로 탐색해 왔다. 90여년 전 ‘조광’ ‘삼천리’ 같은 잡지는 물론 신문들까지 그녀의 삶을 스캔들 혹은 에피소드로 다루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는 이 뼈대에 풍성한 실감을 입혀 최영숙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단순히 사실을 되살리는 차원을 넘어서서 섬세한 문장으로 읽는 맛도 돋운다.

“시간은 숲 속의 전나무 꽃가루마냥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내려앉아 대지 위에 앙금처럼 쌓여간다. 이윽고 지평선 너머 한끝이 붉게 타오른다. 진홍의 융단 같은 노을이 황홀히 내려앉으면 천지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것도 잠시, 지상에는 어스름의 장막이 낮게 깔린다. 이윽고 하늘에 화살 같은 별들이 한둘씩 튀어오르면서 밤이 시작된다. 시베리아는 그 자체로 우주다.”

최영숙은 구스타프 아돌프 스웨덴 황태자에게 신임을 얻어 왕실도서관에서 동양학 보조연구원으로 일했다. 황태자의 잔류 권유를 마다하고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지를 돌아 귀국하는 길에 배에서 인도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인도 땅에 내려 결혼한 후에는 조선으로 귀국하기를 고집했다. 강동수에게 빙의한 최영숙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내 삶이 아니었다. 그런 방식의 삶은 중국으로,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서전으로 가지 않고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림을 그립네, 성악을 합네 하다가 돈 많은 실업가의 후취가 되거나 시골에 넓은 전장을 가진 아버지를 둔 동경유학생의 현지처가 된 어떤 신여성들처럼.”

경성으로 돌아온 최영숙은 엘리트 여성을 오히려 배격하는 가부장 의식에 찌든 사회에서 취직도 못하고 여성 노동운동을 준비하면서 콩나물 장사를 하다가 귀국 5개월 만에 인도 남자의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짧은 생을 마친다. 그리스 최초의 여성시인 사포의 시에서 소설 제목을 가져온 강동수는 “그녀에게 좀 더 긴 생애가 허락되었더라면 그녀는 우리 근대사의 숲을 지키는 잎이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됐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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