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모부가 누운 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모부는 배 농장을 하던 땅과 놀던 땅 모두를 농협 조합장 선거에 갈아 넣었다. 이모부는 즙처럼 누워 쓸쓸히 편했고 압해는 바다를 꽉 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모는 꽉 눌린 생물이 되어 압, 압, 울음을 찾는다.”
시인은 남해의 섬 ‘압해도’에서 이모부의 죽음과 이모의 울음소리를 파도소리처럼 듣는다. ‘인천’의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조국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작전의 일부일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린 것이다. 청어 떼 옆에 모로 누워본다”고 쓴다. ‘이태원’에서는 “도처에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른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기를 바라며 걸음의 볼륨을 높인다. 두 발로 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보폭으로 다른 사람인 척 해본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서효인은 “정작 이번 시집의 몇 편 때문에 멜랑콜리한 낭만적 연애시인으로 오해받을까 염려된다”면서 “오래전부터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아울러 공간성에도 흥미를 느껴오던 터에 공간과 역사가 만나는 맥락을 연작시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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