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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결혼식 문화 '주례 없이도 결혼식 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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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15 06:00:00 수정 : 2017-02-15 00: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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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으로 봄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4일. 부산 광안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A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이준혁(30)-오보은(30) 동갑내기 커플은 하객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재치 있는 ‘혼인서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결혼식하면 흔히 떠오르곤 하는 나이 지긋한 주례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등의 상투적인 주례사는 없었다. 대신 양가 부모님의 감동스러운 편지글과 커플의 연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온 친구의 유쾌한 축사, 두 사가 이어졌다.

이씨는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영상이나 축가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주례까지 있으면 식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하객으로 참여한 결혼식에서 주례사가 지루했던 것도 고려했다. 아울러 부산에서 식을 치르다보니 부산까지 와달라고 부탁할 만한, 우리 두 사람을 잘 아는 어른이 없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이모(34)씨는 “축가와 두 커플의 영상 등 주례가 있을 때와 예식 시간 자체는 비슷했지만, 훨씬 재미있고 집중이 잘 되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두 사람의 연애사를 잘 아는 친구의 축사가 인상적이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신랑과의 친분으로 생애 첫 결혼식 사회에 나선 KBSN스포츠의 오효주 아나운서는 “주례없는 결혼식에서는 사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들었다. 식 중간중간 소위 말해 ‘마가 뜬다’고 하는, 침묵이 흐르는 상황이 없도록 결혼 관련된 명언이나 축하와 응원 멘트 이런 것을 따로 적어서 준비했다. 식이 아무 탈없이 잘 끝나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과거만 해도 ‘주례 없는 결혼식’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주례 없는 결혼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 컨설팅 업계 1위인 아이웨딩에 따르면 올해 1월 성사시킨 976쌍 중 82쌍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렀다. 비율로 따지면 8.4%. 아이웨딩 이종현 홍보제휴팀장은 “아직은 주례가 있는 결혼식이 절대 다수긴 하다. 그러나 2014년에 비해 2015년에 주례 없는 결혼식이 7% 증가했고, 2015년에 비해 2016년엔 9.7%가 증가했다. 앞으로 그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결혼 관련 업체들이 워낙 난립해 있다 보니 업체마다 보유한 데이터가 제각각이다. 결혼식 전문 사회자 업체인 ‘나인컬렉션’의 윤우람 대표는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8대2 비율로 더 많다. 주례 없는 결혼식에서는 사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분들이 우리 업체를 찾는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많은 커플들은 다양한 이유로 주례 없는 결혼식을 택했다. 대다수가 본인의 하객 경험이 바탕이 됐단다. 결혼 2년차에 접어든 김모(34)씨는 “내가 하객으로 갔을 때 주례사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서 ‘내 결혼식에는 주례 없이 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주례로 모실 분이 마땅치 않은 것도 큰 이유였다. 치열한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평균 결혼 연령이 30대 초중반으로 늦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대학 졸업 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결혼하기 때문에 주로 주례로 모시곤 하는 대학 교수들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지난해 12월 결혼식을 올린 민모(33)씨도 “주례로 모시고 싶은 분이 마땅히 없었다. 대학교 CC인지라 학과 교수님을 모셔도 됐지만, 주례 부탁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교수님도 없었다. 양가 부모님은 ‘그래도 주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결혼 준비를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에 주례 없는 결혼식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답했다. 예전만 해도 양가 부모의 체면이나 격식 등을 이유로 결혼식 준비에 부모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지만, 이제는 신랑신부 중심의 결혼식이 대세가 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엄숙하고 무거운 예식보다는 신랑신부와 가족, 친구 등 결혼 당사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재밌고 유쾌한 파티 형식의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젊은 층의 심리도 주례 없는 결혼식 증가에 한 몫했다. 오는 4월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 신랑 이모(40)씨는 “주례가 있으면 신랑신부가 예식 내내 주례만 바라보다가 끝날 때야 돌아서서 하객들한테 인사를 하는 게 싫었다. 내가 초대한 하객들을 바라보며 최대한 교감을 나누고 소통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게 됐다. 주변 지인들과 재미있는 결혼식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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