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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의 특별전 ‘명문도자Ⅰ:청자·분청사기’는 명문이 새겨진 도자기를 한데 모았다. 호림박물관 제공 |
지난 11일 시작된 호림박물관의 특별전 ‘명문도자Ⅰ:청자·분청사기’ 전시실에는 글자를 새긴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전시실 입구에 배치된 청자들에는 ‘기사’, ‘경오’, ‘임신’ 등의 간지(干支)가 선명하다. 연 단위로 생산량을 계획하고, 제작과 사용을 감독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간지가 지목하는 시간은 13세기 후반(1269∼1295년)설이 있으나 최근에는 14세기(1329∼1355년)설이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조선 초에 유행했던 분청사기에는 장인 이름, 품질표시, 사용처 등이 적혀 있는데 가장 많은 건 관청명이다. 기록에 따르면 태종 17년(1417년)에 장흥고(궁궐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공급, 관리를 담당한 관청)에 바치는 도자기나 목기에는 “장흥고 3자(字)를 새기게 하고”, 다른 관청에서도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는 건의가 있었다. 또 세종 3년(1421년)에는 장인의 이름을 새기게 해 “마음을 써서 만들지 않은 자에게는 그 그릇을 물어 넣게 하소서”라는 요청이 있었다. 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고, 생산자를 분명하게 해 도자기의 품질이 떨어질 경우 책임을 묻기 위한 방책이었다.
간지나 관청명, 지역명은 세 자 정도에 불과하지만 도자사를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박물관은 “간지명 청자는 고려후기 청자의 전개와 제작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중요한 편년 자료”라며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임신’(壬申)과 ‘대내’(大內) 등의 명문은 앞으로 청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관청명, 생산지 등의 명문은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밝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전시회에는 상왕(上王)으로 물러난 정종의 재정을 살피기 위해 설치한 ‘공안부’, 태종이 세자 교육을 위해 세운 ‘경승부’ 등에서 사용한 분청사기가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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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청자’(위)와 ‘의성고명 분청사기’. 간지는 제작 시기를, 관청명은 도자기의 소비처를 알 수 있게 한다. 도자기에 새긴 명문은 자료가 부족한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호림박물관 제공 |
바닷속에서 발견된 우리나라의 고선박 14척 중 마도 4호선은 특별하다. 13척이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의 배들인데 비해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배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해 마도 4호선 발굴 사실이 전해졌을 때 큰 관심을 끌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도 4호선이 조선시대의 배라는 사실을 확인한 결정적인 근거 중의 하나가 도자기의 명문이었다.
마도 4호선에서 건져 올린 분청사기는 140여 점이었는데, 3점에서 ‘내섬’(內贍)이라는 명문이 확인됐다. 내섬은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2품 이상 관리에게 주는 술과 안주 등을 담당했던 조선시대 관청인 ‘내섬시’를 뜻한다. 고려 때 설립된 ‘덕천고’(德泉庫)를 1403년 내섬시로 이름을 바꿨다. 1417년에 공물로 바치는 그릇에 관청의 이름을 새기라는 명령이 있었고, 1421년에 그릇에 관청 명칭 대신 제작자 이름을 쓰도록 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내섬명 분청사기’는 마도 4호선이 1410년대 공물로 납부된 도자기를 싣고 가던 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도자기에 새겨진 단 두 자가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 뜻밖의 분야에서 결정적인 사료가 된 셈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발굴조사보고서에 내섬이라는 글자의 의미 등 마도 4호선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들을 수록했다.
호림박물관 특별전에서는 내섬을 새긴 병, 접시, 완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은 “내섬시 소용을 의미하는 명문으로는 ‘내섬’, ‘내섬시’, ‘내섬집용’ 등이 있다. 내섬시에 공납된 분청사기는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제작되었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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